“투표는 했겠죠. 하지만 ‘특별시민’을 안 찍었다면 당연히 해야 하고 누구나 다 하는 것에 생각이 그쳤을 거예요.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국민으로서, 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거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거든요. 이 영화가 없었다면 그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지는 못했을 거예요.”
이처럼 ‘특별시민’은 심은경에게 국민으로서 깨달음을 주었다면 배우로서 가르침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내 연기생활은 ‘특별시민’을 찍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으니 말을 다 한 셈이다. 그에게 이렇게 뜻 깊은 작품이 된 것은 선배인 최민식의 공이 크다.
“한국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게 ‘올드보이’예요. 미국 유학 시절에 ‘올드보이’를 처음 봤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저절로 최민식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고 언젠간 현장에서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최민식과의 첫 만남은 긴장 그 자체였다. 심은경은 “너무 떨려서 제 소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배님의 아우라에 압도돼 두렵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 심은경의 불안함을 떨쳐준 것은 최민식이었다.
“잠깐 쉬는 시간에는 먼저 다가와서 장난도 쳐주시는 분이 최민식 선배셨어요.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에다 너무 떨다 보니 긴장을 많이 풀어주려고 해주셨어요. 또 촬영을 할 때는 제가 맡은 캐릭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기도 하고요. 촬영이 없으신 날에도 오셔서 제 연기를 모니터 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런 점들이 제가 ‘박경’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많은 배움이 있었기에 제 연기생활은 ‘특별시민’ 찍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아요. 이후 작품을 할 때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심은경이 맡은 ‘박경’은 선거판의 젊은 피다. 변종구(최민식)에게 일침을 날린 패기로 심혁수(곽도원)의 눈에 띄어 선거판에 입문하게 되면서 단숨에 핵심인물이 되지만 자신이 꿈과 다른 현실을 보며 혼란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심은경이 이 캐릭터를 맡고 나서 시작한 것은 시나리오 간파였다. 그는 “캐릭터 분석보다 정치판의 흐름, 용어들을 익히는 게 우선이었다. 시나리오에 있는 정치용어나 선거 캠프가 돌아가는 모습, 또 박경 같은 포지션으로 일하는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아야했다. 정말 치열하게 준비해서 뭘 어떻게 연기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몰입했다”라고 말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박경’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여부였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캐릭터이다 보니 제가 이 연륜에 맞게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혹시 제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했죠. 하지만 감독님께서 박경은 완벽함보다 신념과 꿈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 신선한 점을 제게서 끌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믿음과 긴장감을 동시에 끌어안고 출발을 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심은경은 ‘내려놓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부터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쉼 없이 작품 활동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는 그런 생각이 부질없던 것임을 알게 됐다고.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제 삶이 중요해져야 하는데 제가 어느 순간 일에만 몰두를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지 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 작품으로 제 삶도 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나의 부족함을 어쩌지?’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부족해서 더 쌓을 게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변하기도 했어요.”
그런 긍정적인 영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심은경은 국내 밖에서도 활동을 펼치게 됐다. 그는 최근 일본 매니지먼트사 유마니테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예전부터 일본 활동을 꿈꿨던 그에게는 더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일본에서는 신인배우입니다! 하하.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감사해요. 이제 작품 활동을 다양하게 이어가는 것은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에요. 그가 전달하려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참 와 닿아요. 또 이와이 슌지 감독의 감성 영화도 해보고 싶고요. 어떤 기회든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어요. 경험치를 쌓아갈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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