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해피엔드’(1999) 정지우 감독과 무려 18년 만에 작품에서 재회했다.
최민식을 필두로 박신혜 이하늬 박해준 류준열 이수경 등 많은 배우가 함께했지만 ‘침묵’을 이끄는 힘은 최민식에 있다. 정지우 감독도 “최민식이 곧 장르”라고 밝혔을 정도다. 임태산을 맡은 최민식은 냉철한 사업가이자 아버지 그리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한 남자의 감정과 고뇌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 ‘침묵’을 봐야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바로 ‘최민식’이 아닐까.
Q. 정지우 감독은 배우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편이었나요.
A. 정지우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에요. 배우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사람이 좋죠. 열려 있고, 의견도 많이 받아들여주는 감독이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에요. 영리한 감독이에요.
감독은 배우든 스태프든 그 사람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시켜서 작품에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정지우 감독은 권위의식 없이 작품을 통해 교감하는 감독이에요. 정 감독의 그런 태도가 현장을 유연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어요.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곤 했죠.
Q. 그럼에도 막힐 때는 어떻게 풀어나갔나요.
A. 어느 현장이든 항상 충돌은 있죠. 일단 끝나고 술부터 먹죠. 하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서로 아주 피곤해져요. 일종의 기 싸움인데 그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거고 아무짝에 쓸모없어요. 정지우 감독과는 그런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에요. 계급장 떼고 어우러지는 관계죠. 그런 게 바람직한 것 같아요.
Q. 후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A. 주도적으로 배려했다기보다는 제가 재롱을 떨었죠(웃음). 박신혜 이하늬 조한철 류준열 모두 제가 다 상대하는 관계잖아요. 배우 각각의 집으로 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하죠. 임태산과 화학반응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문전박대 해버리면 피곤해지는 거예요. 전체가 힘들어지죠.
다들 문을 활짝 열더라고요. 저 스스로도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사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같이 동료로서 어우러지려면 그 친구들에게 유연함이 없으면 불가능 한 거거든요. 다들 프로페셔널 하구나 싶었죠. 그래서 제가 덕을 많이 봤다고 말하는 거예요. 다른 배우들의 유연함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이런 조화는 생각도 못하죠.
Q. 이하늬 배우와는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어요.
A.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촬영 전에는 우려도 조금 있었어요. 작품을 해본 적도 없고 그 친구가 나온 작품을 많이 못 봤거든요. 유나를 연기하려면 단순한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의 자식까지 끌어안아야 하거든요. 넓은 마음과 깊이가 있어야 하죠. 여기에 여자로서의 못마땅함도 있잖아요. 배려심과 속상함 모든 감정이 나타나야 했어요.
이하늬와의 첫 촬영에 요트 장면을 찍었는데 그동안 그에게 알량한 선입견을 가진 것에 반성했어요. 이하늬가 안 해줬으면 안 됐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마웠어요. 후반부에 ‘괜찮아’라는 대사도 이하늬가 한 대사예요. 그건 이하늬 본인의 마음이 깊다는 거예요. 얼마나 예뻐요. 상대 배우가 풍성하고 깊이 표현해줄 때 정말 고맙죠. 이하늬가 유나를 표현해줄 수 있을까 갸우뚱 했던 것에 대해 많이 반성했습니다.
Q. 박신혜 배우와는 어땠나요.
A. 박신혜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한류 스타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학교 후배 같았어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른다고 고백하면서 모르는 것에 대해 속상해하는 모습이 기억나네요. 어떻게 해서든 감정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친구였어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싶어서 반성했죠. 이하늬 박신혜 같은 친구들을 보면 옆에서 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나를 딛고 올라가라고 하고 싶어지죠.
Q. 류준열 배우도 언급 안 할 수가 없죠.
A. 반말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전혀 안 쫄고요. 저는 신인 시절에 그런 배포가 없었어요. 3번만 NG 내도 ‘쟤 어디서 데리고 왔냐’면서 눈초리가 어마어마했죠. 필름시대였잖아요.NG 안 내려고 잔뜩 긴장해 있곤 했어요. 다 제 자격지심이죠. 요즘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솔직하고, 드러내는데 주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가 좋은 것 같아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CJ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