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치명적 우아함 ‘정 안나’ 내 마음 속 저장버튼 ‘꾹’

입력 2018-03-0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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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는 여인 안나 카레니나. 정선아는 우아하고 황홀하며 처연한 ‘안나’를 만들어내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짙은 러시아 향 나는 유채화 같은 작품
안나와 키티의 화해 장면 이중창 절정
서울공연 끝…2일 대전부터 전국투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서울공연의 막을 내렸습니다. 서운합니다. 하지만 아직 안나를 만날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전국 공연장의 뜨거운 요청으로 지방 투어에 나섭니다. 2일 대전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부산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로 공연이 이어집니다.

서울공연을 놓쳐 아쉬운 분들은 손 아프게 땅을 치지 마시고 4월5일부터 시작되는 성남아트센터 공연을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알려진 대로 대문호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입니다. 원작의 나라인 러시아제 뮤지컬이죠.

리뷰는 늦어졌지만 개막 초반부터 워낙 소문이 자자해 서둘러 관극했습니다. 러시아 작품답게 등장인물도 통상의 작품들보다 많은 편이죠. 이름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소문대로 정말 무대가 아름다웠습니다. 심플하지만 환상적이고 창의적인 조명이 뒤를 받쳐주니 그야말로 장면 장면이 한 폭의 유채화 같았습니다. 정지버튼을 누르고 통째로 캡처해버리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야 했죠.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공연 모습.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정선아 ‘안나’의 우아함은 전설이 될 듯하군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사교무대에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숨구멍이 조여 왔습니다. 안나와 키티가 서로 용서하는 장면이 참 명장면이죠. ‘대화, 그때 알았다면’이라는 넘버는 안나와 키티의 이중창이 절정을 이룹니다. 이때 안나는 낮은 음, 키티는 높은 음으로 노래합니다. 보통이라면 여성 캐릭터 간의 고음대결을 펼칠 텐데요. 안나에게 연인을 빼앗겼지만 이후 진정한 사랑을 만난 키티와, 그의 연인을 가로챘지만 반대로 쇠락하게 되는 안나가 음의 영역으로도 대비되는 겁니다. 멋진 연출이었죠.

러시아의 냄새가 곳곳에서 나는 작품입니다. 프랑스 작품의 들큰한 향수와는 다른 냄새죠. 보드카 냄새 같기도 하고 딱딱한 빵을 갓 자른 냄새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나는 자신을 초에 비유합니다. 촛불은 끝까지 타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활활 태우고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안나. 마치 영원한 청춘의 걸작만화(혹은 애니메이션) ‘내일은 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3개월간의 서울공연을 마친 정선아는 “정말 추웠던 겨울날씨에도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 분들, 동료 배우들, 뒤에서 묵묵히 고생해 주신 스태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지방투어에 대한 응원을 부탁했습니다. 너무도 우아하고, 너무도 처절해 차라리 아름다웠던 정선아의 ‘안나’를 이대로 보내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지버튼을 눌러야겠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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