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지미 “영화는 시대 비추는 창…배우가 좋은 소재 돼야”

입력 2019-10-0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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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김지미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 4일부터 6일까지 김지미의 대표작 6편을 남포동 비프광장 야외무대에서 상영했다. 6일 남포동에서 만난 김지미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기억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포동(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 ‘한국영화의 살아 있는 역사’ 김지미를 만나다

“20대 때도 할머니 분장하고 노인 역을 했지
서른 편 연달아 찍던 시절…내 작품은 미완
17세로 돌아간다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영화 작업? 내가 못다 이룬 건 후배들의 몫”


배우는 역시 배우다. 1940년에 태어나 17세 때 배우가 된 김지미는 여든에 접어들었지만 기품 있는 외모,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 카리스마 넘치는 말로 인터뷰를 압도했다. ‘걸크러시’의 원조를 찾는다면 아마도 그일 것이다. “절대로 숨어 행동하지 않았고 솔직했다”며 지난 삶을 돌아본 그는 “연애를 해도, 사랑을 해도, 늘 내 행동을 책임져왔다”고 했다.

이뿐이랴.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김지미는 무려 63년의 발자취를 남긴 최고의 스타다. 출연작만 모두 700여 편(부산국제영화제 자료)에 달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특별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를 기획해 ‘장희빈’ 등 대표작 6편을 상영하고 김지미가 직접 나선 오픈토크를 마련한 이유이다.

6일 부산 남포동에서 ‘빛나는 배우’ 김지미를 만났다. “나를 아껴주고 기억하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려고 오랜만에 밖으로 뛰어나왔다”며 웃는 그는 19년 전 미국 LA로 이주해 두 딸, 여섯 명의 손주와 살고 있다.

한국영화계 대표 인물이지만 정작 그는 “내 작품은 전부 미완성”이라고 했다. “12일 만에 찍기도 하고, 서른 편을 연달아 찍던 시절 나온 영화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시엔 기능공처럼 만들었으니 완성도가 떨어져요. 이 영화 찍고 있는데 다음 영화 팀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압박감이 컸죠.”

가족과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배우 김지미.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한 그는 63년 동안 무려 700여 편의 영화를 내놓은 한국영화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남포동(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길거리에서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김지미는 서구적인 외모와 과감한 스타일로 장르 영화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1960년대 엄앵란, 윤정희, 남정임이 ‘트로이카’로 불리면서 로맨스 영화로 경쟁했지만 나는 20대 때도 할머니 분장하고 노인 역까지 했다”며 “그렇게 연기한 배우는 그땐 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지미는 창작의 자유가 억압받던 1980년대 “정신 제대로 박힌 영화를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영화사 지미필름을 세우고 제작도 했다. ‘티켓’ ‘길소뜸’ 등 당대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

삶의 대부분을 ‘배우’로 살아왔지만 17세 때로 돌아간다면 배우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부산스럽게 살면 안 되지.(웃음) 두 딸에게 엄마로서 해준 게 없어요. 직접 기르질 못했어. 그 빚을 손자손녀들 키우면서 갚았어요. 지금 내 삶이 가장 행복해요.”

경험자만 할 수 있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배우는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직업이에요. 언제 끝날지 몰라.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창입니다. 그러니 배우는 영화와 감독에게 좋은 소재가 되어야 해요.”

영화 작업에 뜻이 있는지 넌지시 묻자 그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지 않겠다”며 “내가 못다 이룬 건 후배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남포동(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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