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블랙머니’ 이하늬 “정신도, 몸도 훈련하면서 살아요”

입력 2019-11-0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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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개봉 ‘블랙머니’ 주인공 이하늬의 영화 그리고 삶

론스타 사건이 영화로 나오다니…
무관심한 사회일수록 고발 역할 중요
극중 결과에만 집중하는 국제통상가
한때 나도 연기만 잘 하면 되는 줄…
‘극한직업’ 식구 만나 정체성 찾았죠

“몸도, 정신도 훈련하면서 살아요.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죠. 이 쪽 일을 하면서 눈에 안 보이는 상처도 생겨요.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지끈! 무너질지 몰라요.”

균형감 있는 삶을 추구해서일까. 배우 이하늬(36)는 올해 그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1월 내놓은 영화 ‘극한직업’이 1626만여 관객을 동원해 역대 극장 개봉작 흥행 2위에 올랐고, 뒤이어 출연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 역시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성공을 거뒀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고 연기자로 활동한 이후 가장 눈부신 성과다.

미인대회 출신의 화려한 외모, 국악을 전공한 뒤 가야금 연주자로도 활동하는 이하늬는 사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환경과 상황에 배우로서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최근 행보는 그런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줄 만하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제작 아우리픽쳐스)는 또 다른 이하늬를 마주할 수 있는 무대다.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하늬를 만나 최근의 삶,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사회 고발의 역할도 창작자의 일”

‘블랙머니’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른바 ‘론스타 먹튀 사건’ 소재다. 영화는 과거 벌어진 일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일깨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2011년 외환은행 지분의 단순 매각을 결정한 직후 세금 5조3000억 원이 증발할 위기에 처했다.

이하늬는 ‘블랙머니’를 두고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회 고발의 역할도 창작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론스타 사건이 벌어진 때가 2003년 이후잖아요.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단순히 은행이 매각됐다는 정도로만 인지했어요. 우리 세대가 가진 ‘무관심병’이죠. 더는 미루면 안 되는 화두에요. 누가 코 베어갔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누가 그랬어?’ 물을 순 없잖아요. 눈을 떠야죠. 이제는 개인의 안위를 사회와 분리해 생각할 수도 없는 시대잖아요.”

이하늬는 극중 은행 매각 작업에 참여하는 국제통상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았다. 국익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위해 결과에만 집중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자본의 편에 선 김나리와 우직한 뚝심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열혈 검사 양민혁(조진웅)을 두 축으로 금융과 검찰 권력의 민낯을 비춘다.

영화에서처럼 ‘결과’를 위해 ‘과정’을 포기하는 선택. 이하늬는 어떻게 바라볼까.

“한때 제게도 구시대적인 면이 있었어요. 과정 자체가 비극일지라도 결과만 좋으면 다 괜찮다고 여겼으니까요. 심지어 ‘못되게 굴어도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배우들과는 더 이상 작업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운 좋게 저는 ‘극한직업’의 가족을 만났죠.(웃음)”

이하늬는 ‘극한직업’을 함께한 류승룡, 진선규 등 배우들을 “우리 형제들”이라고 칭했다. 그는 “한 사람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부족함을 채우면서 함께 끌어올리는 팀워크를 배웠다”고 했다. 동시에 ‘극한직업’은 그의 ‘코믹 본능’이 인정받은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데…, 한때 제 꿈이 코미디언이었어요. 희극인은 제 사랑입니다. 하하! (이)국주나 (박)나래를 만나면 ‘정말 사랑해∼’라면서 사랑 고백도 해요. 자신을 내려놓고 희극 연기를 하는 그 분들이 숭고하게 느껴져요.”


● 요가 트레이닝 여행…“애쓰지 말자”

이하늬는 8월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 발리로 요가 트레이닝을 다녀왔다. 매일 매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고 돌이켰다. “특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이 와 닿았다”는 그는 “너무 애쓰고 살아서 그런지 훈련 중 얻은 그 깨달음이 큰 울림을 줬다”고 했다.

그렇게 이하늬는 ‘빠른 성공’보다 ‘건강한 활동’을 지향한다. 2008년 주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뉴욕의 연기 스튜디오에 등록해 1년 6개월 동안 공부한 것도 그런 가치관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20대의 끝인데 더 열심히 활동해야지 왜 미국까지 가서, 그것도 영어로 연기를 배우냐고 다그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 생각은 달랐어요. 다양한 경험이 자산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거든요. 국악도 놓지 않았고 뮤지컬도 했어요. 여러 경험이 지금 저에게 풍부한 비료가 된 것 같아요.”

이하늬는 지난해 할리우드 최대 에이전시인 WME와 계약을 맺고 해외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당장 계획은 없지만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목표만큼은 확고하다.

“4살 때부터 국악을 해서인지 우리 문화를 알리지 않으면 직무유기하는 기분이에요. 사명감이죠. ‘인간문화재’에 속한 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연기자인 제가 할 일도 있어요. 문화와 문화의 충돌, 그런 충돌에 저를 던지고 싶어요. 제 무대가 아프리카일 수도, 발리우드(인도)일 수도 있겠죠. 언제나 안테나를 켜고 있습니다. 하하!”

● 이하늬

▲1983년 3월2일생 ▲2006년 서울대 국악학과 졸업, 제50회 미스코리아 진 ▲2007년 미스유니버스 4위 ▲2010년 MBC 드라마 ‘파스타’ ▲2012년 영화 ‘연가시’ ▲2014년 영화 ‘타짜:신의 손’ ▲2017년 영화 ‘조작된 도시’ ‘침묵’ 등.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2019년 영화 ‘극한직업’, SBS 드라마 ‘열혈사제’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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