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tvN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슬기로운 감빵생활’까지 연달아 히트를 쳤던 신원호 PD가 새롭게 내놓은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전작이 모두 화제성과 흥행을 연달아 일으켜 이번 작품이 잘 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 편엔 자리했지만 시청률 욕심은 진즉에 내려놨다고. ‘좋은 작품은 누구든 보게 돼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만들었다는 신원호 감독은 “시청자들이 그걸 알아봐주셔서 감사했다”라고 간단한 종영소감을 남겼다.
이번 드라마에 큰 특징 중 하나는 밴드를 하는 의사들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배우들은 이번 드라마를 위해 악기 하나씩을 배웠고 여러 곡을 섭렵하는 등 수준급의 실력을 보였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라는 신원호 감독의 결단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배우들이 하는 척만 하면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정말 민망해진다. 그래서 진짜 연주를 하는 방법으로, 또 한 회당 한 곡씩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게끔 만들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 동안 음악, 밴드, 뮤지션 등이 나오는 소재의 작품은 뭐랄까…. 폼만 잡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보면서도 민망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래서 이 이야기가 초반에 나올 때 ‘밴드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괜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덕분에 드라마에서 연주된 곡과 더불어 삽입곡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조정석이 부른 ‘아로하’, 전미도가 부른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나머지 곡들도 큰 사랑을 받았다. 주인공의 목소리가 담긴 이 노래들은 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겐 추억을,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만큼 곡 선곡은 탁월했다.
신원호 감독은 “선곡에 있어서는 이우정 작가가 대본 단계에서 결정한다. 대본을 쓰며 흐름에 맞는 선곡을 하기 때문에 곡을 미리 생각하진 않는다. 쉬운 방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작권 문제가 있어 외국의 메탈, 록 등 유명한 고전 밴드들의 곡을 못 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점은 참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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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친근하고도 웃긴, 그리고 진지한 캐릭터들의 조합과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실력으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신원호 감독은 “조정석을 비롯해 정경호, 유연석, 김대명, 전미도가 정말 절친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 드라마가 큰 덕을 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원호 감독이 ‘응답하라 1997’을 시작할 때부터 해온 방식이 있다면, 촬영 전에 모두가 친해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캐릭터’라는 가면을 쓰고 대사를 하지만 그들이 정말 친한지는 화면 너머에서도 다 보인다”라며 “그래서 나름 배우들이 친해질 수 있는 사전작업들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라고 말했다.
“촬영장이 늘 시끌벅적해서 제가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배우들은 수다를 떨었던 것 같아요. ‘99즈’들을 보면 늘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신났는지 웃으며 대화해요. 겉으론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속으론 내심 고마웠어요. 그 연기호흡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에 더 좋아해주셨던 게 아닐까. 배우들 개개인의 만족도도 물론 높지만 5명 모두 친하게 지내서 캐스팅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흠을 굳이 꼽자면, ‘99즈’ 캐릭터가 너무 이상적인 의사들의 모습이라는 시청자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신원호 감독이 연출한 모든 드라마는 ‘세상사람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판타지가 투영돼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도 그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그랬다. 신원호 감독 역시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동안 ‘교도소에 저렇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병원에 저렇게 좋은 의사가 어디 있어’하는 댓글도 많이 봤다”라고 말했다.
“판타지일지라도 드라마를 보며 마음이 좋아지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지’, ‘나도 저런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런 목표를 위해 매번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의 집단이 판타지라 여겨지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서 선한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수많은 드라마 중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원호-이우정 콤비 작품의 최대의 장점 중 하나는 ‘밸런스’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의학드라마는 대부분 전문적이거나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로 좁혀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는데 반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적절하게 분배돼 눈길을 끈다. 그는 “우리 마음속 가이드라인은 70%의 병원 이야기에 30%의 각자 이야기가 더해지는 구조였다. 그 30%에 가족, 친구, 꿈, 사랑 이야기가 포함돼 있었다”라며 “하나의 소재로 색깔을 정하기보다 소소한 여러 이야기가 하나에 집중되면 결국 큰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주요 인물인 ‘99즈’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지 말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12부작에서 5명의 이야기를 푸는 것이 시청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미 그려둔 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진행하되 각 회마다 한 명의 이야기를 넣어 시청자들이 집중할 수 있게끔 풀어나갔어요. 다만 각 회의 중심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들도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개인적인 서사를 진전시켜 사후에 등장할 에피소드의 발단을 진행시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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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 방영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주1회 방영을 택하기도 했다. 신원호 감독이 이 방식을 택한 이유는 근로환경 개선 때문이었다. 그는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스태프 협의체를 구성,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사전에 협의를 하고 진행했다. 시스템과 규칙이 정해지고 합의의 장이 생기니 자 역시 미안해지는 부분이 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합의한 선을 지켜서 촬영했기 때문에 제가 뭘 더 요구하거나, 은근슬쩍 스태프들의 권리를 침해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의 피곤함이 전체적으로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그 여유가 결국 다시 현장의 효율로 작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악기라고는 다뤄본 적도 없던 연기자들에게 그렇게 여유 있는 연습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주1회 방송이라는 형식이 준 여유였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2회 대비 파괴력이나 다음 회를 보게 하는 힘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예상한 것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라며 “결국 재미가 있으면 시청자들은 본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여전히 제작사나 방송사가 주1회 방송이나 시즌제, 사전제작 등의 풍토를 만들기에는 현실적인 것에 부딪힌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5분물, 30분물, 120분물 등 런닝타임의 변화나 3부작, 6부작 등 제작편수의 변화 같이 드라마 형식이 다양화 되고, 이와 함께 플랫폼들이 확장되면서 정말 수많은 형태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시청자들도 외국 드라마를 많이 접하시면서 주1회 방송이나 시즌제에 많이 친숙해지셨더라고요. 이에 시청자들이 ‘내년에 또 보고 싶다’며 기꺼이 이 이야기를 계속 볼 의향이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시청자는 물론이고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죠.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그 다짐을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원호 감독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대해 “2021년 새로운 계절에 돌아올 예정이니 방송을 통해 모든 부분을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올해 말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며 방송 시기는 미정이다”라고 말하며 시즌1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12주간을 사랑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애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다음 시즌까지 따뜻한 감정을 잘 품어주시면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고 별일이 없다면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