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어나더 컨트리’ 문유강 “다시 만난 ‘저드’와 잘 헤어지고 싶어요”

입력 2020-08-12 02:04: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보통 신인 배우들의 인터뷰는 일반적으로 짜인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제 막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라 질문자 입장에선 정보가 많이 없고 답변자 입장에선 처음 겪는 일정이라 긴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예 문유강은 예외로 둬도 될 것 같다. 어찌나 똑부러지게 말을 잘하는지 시쳇말로 ‘두 번째 생’을 사는 것 같은 신예다. 그는 “전혀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문유강이 출연 중인 ‘어나더 컨트리’는 영국의 극작가 줄리안 미첼(Julian Mitchell)이 실존 인물과 사건을 모티브로 쓴 극으로 파시즘과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의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이단아 ‘토미 저드’, 그리고 각기 다른 가치관과 성향을 지닌 청년들의 고뇌와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2019년 한국 초연 당시 발굴한 신예들의 에너지로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던 가운데 이 연극으로 데뷔 무대를 치른 문유강은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이단아 ‘토미 저드’로 분해 신예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순식간에 떠오르는 별이 되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1년 만에 재연 무대에 오른 문유강은 “1년 만에 연습을 들어갔는데 세세한 것이 다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 익숙함을 견제하려고 했다. 또 1년이란 시간동안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과 스스로의 변화들이 건강하게 부합될 수 있도록 연습을 했었다”라고 말했다.

“연습 과정에서 제가 너무 세세하게 다 기억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익숙함을 견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부분을 더 명확히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 올라서는 새로운 배우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물들의 미묘한 차이와 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신경전들이 새로워서 재미있어요. 또 저드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명확한 캐릭터성을 가질 수 있게 구축된 지점들이 있어요. 그래서 익숙하지만 또 다른 새로움이 있어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문유강이 맡은 저드는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차갑다. 몰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뺏긴 손전등만 몇 개 인지 모르는 학구파이며 학교 안에서의 체재를 거부하는 반골 기질이 강한 인물이다. 같은 역할을 하지만 올해는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었다. 문유강은 ‘17살’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저드는 어쩔 수 없는 17살이라는 지점과 싫은 것들에 대해 분명히 싫다고 말을 하고 좋은 지점에 대해서는 누릴 만큼 누리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라며 “지난해에는 17살 이상의 단단함과 강직함을 주요한 부분으로 삼아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면 올해는 그 안에서도 빈틈을 보이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인물의 매력과 타당성이 스며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면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부분들이 생겨서 내가 고민했던 것들과 새로운 대사들이 잘 부합됐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외형적인 부담감에서도 벗어나게 됐다고. 1930년대 시대적 배경과 명문기숙학교 안에서 교육을 받는 인물이기에 말투나 제스처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조금 힘을 뺀 상태로 연기를 하고 있다. 문유강은 “학교 체재 안에서 자랐고 체재를 거부하지만 행동양식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서 꼿꼿한 자세나 책을 읽을 때 손 모양까지 신경을 썼지만 저드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힘이 좀 덜 들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라며 “연출과 상의를 해서 교육의 수준은 높아 보이지만 조금은 편안하게 행동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를 설명할 때는 더 힘을 주고 빠르게 말을 하며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도 작년에도 초연 캐릭터가 분명해서 재미있게 했었지만 제가 외형적으로 상대 배우들에 비해 커서 캐릭터가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올해는 제 키가 평균 정도가 되거든요. 그런 외형적인 지점에서도 제가 좀 편안하게 행동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올해는 좀 편안한 ‘저드’가 되려고요.”

문유강과 ‘저드’는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니 웃는다. 분명 있긴 하지만 ‘저드’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을 뚜렷하게 갖자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1년이 지날 때마다 생각이 바뀌고 학교나 사회에서 계속 배우고 있는 만큼 생각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내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지키려고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좋은지 싫은지를 구분 지을 수는 있지만 무엇이 맞고 틀린 지 알 수 없을 때 조금 답답해 하는 면이 비슷한 것 같다. 흑백논리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가치관을 분명하게 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 점에서 저드와는 비슷한 사람 같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저드’만큼 비범하거나 강하고 굳건한 사람은 아니에요. 요즘은 ‘체벌’이라는 것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저드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체벌이 학교의 제도 중 하나로 벌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명확했고 또한 그 안에는 계급도 있었고 많은 이들이 특정 계급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시대였어요. 그런 점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시대에 살았다면 저는 지조 있게, 신념을 지키며 살 수 있었을까요? 타협하며 살았을 수도 있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저드’를 하며 문유강은 그를 잘 보내주자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다음 공연에 다시 설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지만 매번 연기를 할 때마다 배우로서 느끼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다. 그는 “늘 역할을 맡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두 달 남짓 모여서 우리가 만든 세계를 누군가에게 보여드림으로 그 공연을 함께 했을 때 마지막에는 캐릭터를 잘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때는 그런 마음이 커져서 제가 더 이상 이 대사를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을 때도 있어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 캐릭터가 다 하는 공연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늘 공연 때마다 캐릭터와 잘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어나더 컨트리’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저드’를 더 보강해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이 컸거든요. 공연 마지막 날까지 똑같은 장면을 연기하겠지만 그와 좋은 작별을 하고 싶어요.”지난 1년간, 문유강은 연극 ‘어나더 컨트리’를 포함해 공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등으로 대학로의 신성으로 주목 받았고 그리고 JTBC ‘이태원 클라쓰’에서 얼굴을 내비쳤다. 꽤나 바쁜 한 해를 보낸 문유강은 “기대하지 못했던 관심을 주셔서 놀랐다. 처음에는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신기하면서도 더 열심히 내 길을 걸어갔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제가 잠시 쉴 때 책을 읽으려고 책갈피를 찾다가 선물을 받았던 상자를 찾았는데 그걸 여니 문득 감사함을 더 느꼈어요. 그 안에 들어있는 선물들을 보며 ‘아 맞아, 이런 것을 주셨지’라는 생각도 나고요. 솔직히 말하면, 가족들이랑 살고 있으니 제가 공연 끝나고 손에 한 가득 이런 걸 들고 오면서도 좀 쑥스러웠어요. 그런데 제 모습을 보신 부모님과 형이 더 좋아하는 걸 보니 이게 나만의 감사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를 기억해주시고 기록해주시는, 어찌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게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문유강은 코로나19에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지만 요즘에는 체온을 재거나 문진표 작성 등 조금 번거로운 과정도 있고 관람을 할 때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잖아요. 저도 공연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마스크를 쓰면서 보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 줄은 알아요. 그래서 저희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에게 더 감사해요. 모두 건강하게 관람하셨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