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종이방원', 홍보는 계속…입만 나불댄 사과 [전:할 말 할래요]

입력 2022-01-21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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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태종 이방원' 제작사가 동물 학대로 고소 당했다. KBS는 '말이 사망해 안타깝고,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과문을 던져놓은 후 바로 다음날인 오늘(21일), 방영을 앞둔 14회 예고 스틸컷을 공개하는 홍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면, 지금 홍보가 아닌 신속하게 재발 방지책를 내놓아야하지 않나. 진정성 없는 사과문, 입만 나불대는 KBS 조치에 관련 단체들과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19일부터 KBS1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에서 말이 학대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20일, 공식 SNS에 '촬영 현장 영상을 확보했다'라며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을 담았다. 말을 쓰러트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말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트렸고, 그 과정에서 말은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고꾸라졌다. 말이 넘어질 때 함께 떨어진 출연 배우 역시 부상이 의심될 정도. 컷 사인과 함께 스태프들은 말에서 떨어진 배우의 상태만 확인할 뿐 말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다.

동물자유연대는 "2022년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촬영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고 꼬집으며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 금지 처벌하고 있다. 또 이같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촬영, 게시하는 것도 동물학대로서 범죄에 해당한다"라고 '명백한 동물학대'임을 강조했다.

동물자유연대는 KBS에 향후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 마련을 위한 면담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KBS는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며, 제작진은 사전에 안전에 만전을 기했지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해명을 했다.

(다음은 KBS 입장문 일부) ● 사고는 지난 11월 2일, '태종 이방원' 7회에서 방영된 이성계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발생했다. ● 낙마 장면 촬영은 매우 어려운 촬영이다. 말의 안전은 기본이고 말에 탄 배우의 안전과 이를 촬영하는 스태프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라며 "하지만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 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말의 사망 소식을 덧붙였다.

이 해명은 학대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면, KBS와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말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이어 "KBS는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재발 방지로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동물 안전을 위해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KBS의 '시인' 후, 동물권행동 단체 카라는 KBS와 '태종 이방원' 제작사를 동물 학대로 고소했다.

카라는 공식 SNS를 통해 "KBS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물 학대 정황을 확인함에 따라, KBS와 제작사에 공문 및 '카라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전달함과 별도로 해당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학대로 경찰에 고발 접수했다"라며 고소장 사진을 게재했다.

또 "제보 영상 속에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말은 목이 완전히 꺾이며 고꾸라졌으며 스스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없어, KBS 측의 설명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라며 2차 해명을 요구, "KBS는 이번 일을 '안타까운 일' 혹은 '불행한 일' 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KBS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이 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매우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이는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여러 전문가들은 현장에 말 전문가가 투입되었는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말은 공감 능력이 있는 동물이라 심리 치료에도 쓰이는데, 그런 말의 발목을 일부러 잡아서 넘어트린다는 것 자체가 살생이라는 의견이다. 더불어 KBS의 이전 사극(정도전, 연모)에서도 비슷한 낙마 장면이 연출돼 KBS가 그동안 몇 마리의 말을 죽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오늘(21일) 홍보 보도자료를 통해 “23일 방송될 14회에서는 이성계와 이방원 부자(父子)의 대립이 더욱 고조된다. 마침내 각성한 이방원의 왕위를 향한 고군분투도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아무리 KBS가 시청자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며 5년 만에 부활시킨 대하 사극이고, ‘퓨전 사극’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를 방패로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 현 방송가에서 최고 11.2% 시청률로 오름세를 보이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이면 뭐하나. 생명을 경시하는 제작 환경과 태도는 경악할 수준인데. 시청을 독려하기 전에 동물 안전 보장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부터 내놓는 것이 일의 순서다.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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