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학전
“난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가수 김민기는 배우와 가수 등 무대에 오르는 이들을 “앞것”이라 불렀다. 관객과 가까운 무대 위에서 ‘플레이’하는 이들을 위한 말이다. 자신이 관심받기보다는 그들이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그는 뒤로, 더 뒤로 물러났다.
김민기가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추억했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낮은 곳에서의 삶을 살아왔던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김민기가 자신의 사람들을 챙긴 곳은 대학로 문화의 상징인 소극장 학전이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내놓으며 받은 선불금으로 1991년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1990년대 초 모든 가수에게 ‘꿈의 무대’로 통했던 학전에서는 들국화, 이소라, 조규찬, 노찾사, 권진원, 박학기, 강산에, 장필순, 윤도현 등의 무대가 됐고, 고 김광석은 당시 ‘1000회 공연’을 펼쳐내 최고 스타가 됐다.
앞서 3월 방송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당시 김광석이 ‘나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많지 않다’며 솔로 무대를 주저하자 김민기가 “세상에 노래는 많고, 그중 너에게 맞는 노래가 있다. 그런 걸 찾아서 부르면 네 노래”라고 조언하며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보게 한 사연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서도 잇달아 스타들이 나왔다. 학전 1기생인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 초연 배우로 활동하며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과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연출가로 인생의 제2막을 열기 전 그는 양희은에게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만들어줬다. 하지만 1975년 유신 반대 시위 때 ‘아침이슬’을 불러 ‘대학생들에게 불온한 사상’을 심어줬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