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명창의 일대기를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 ‘오페라 솔로 김정민’이 제작된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촬영 중인 김정민 명창. (사진제공=KS크레디아)
한국인 첫 해외 3시간 완창 공연
오페라 본고장 伊 등서 매진 행렬
소녀 명창으로 유명…‘원조 정년이’
영화 ‘휘모리’ 주연, 대종상 신인여우상
CEO 명창, 해외 다큐멘터리 제작도
명창(名唱). ‘뛰어나게 잘 부르는 노래’ 또는 ‘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는 국어사전과 달리, 국립국악원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중에서도 ‘판소리 소리꾼 중 특별히 소리를 잘 부르는 사람’이라 좁혀 부연하고 있다. 그만큼 명창이란 이름은 높고 중(重)하다.오페라 본고장 伊 등서 매진 행렬
소녀 명창으로 유명…‘원조 정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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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명창, 해외 다큐멘터리 제작도
명창 김정민은 자신의 피땀, 시간과 교환한 판소리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인생을 바쳤고, 지금도 바치고 있는 사람이다. 3시간 이상 걸리는 판소리 완창을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23차례나 해낸 정통 소리꾼인 그가 트로트 앨범을, 그것도 두 번이나 냈을 때는 국악계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MBC, KBS, EBS에서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라는 제목의 강연을 펼친 명강사이며, 화장품 기업 지오앤위즈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김정민은 소리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했다. 그가 국악에 눈을 뜨게 된 에피소드는 마치 판소리 한 대목 같다. 비 내리는 어느날, 빗소리와 가야금 음률이 화음을 이루며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에 넋놓고 있다가 문득 ‘아, 이 길을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야쿠르트의 선두타자가 2루타를 친 순간,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명창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뭐니뭐니 해도 ‘완창’에서 나온다. 김정민은 2013년부터 10년간 무려 23차례나 완창무대를 가진 명창 중의 명창이다. 국악방송 풍류극장 무대에서 판소리 완창을 하고 있는 김정민 명창. (사진제공=KS크레디아)
● 해외에서도 알아본 명창의 예술세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판소리와 가야금 연주를 병행하던 그가 고등학생이 되자 경기민요, 정가, 판소리 선생님들이 몰려와 “네 목이 좋다”며 판소리를 주전공으로 삼을 것을 권했다. 국악예고를 나와 중앙대 한국음악학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김정민은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보유자인 명창 고(故) 박송희 선생으로부터 ‘흥보가’와 ‘적벽가’를 사사했다. 김정민은 판소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전통예술의 저변 확대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1994년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휘모리’에 출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영화는 김정민에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겨주었다.
퓨전국악, 민요, 트로트, 가요를 두루 섭렵해 2021년, 2022년에는 트로트 앨범을 제작했다. 앨범에는 ‘한 많은 비빔밥’, ‘하늘이 땅 되어’, ‘똑똑’, ‘꽃비’, ‘잔칫날’ 등의 곡이 수록돼 있다.
김정민 명창의 해외 공연 모습. 그의 완창공연은 전석매진됐다.
“가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데 객석에서 숨소리 하나 안 들렸어요. 3시간 완창을 마치고 나니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죠.”
김정민의 꿈은 현대무용가 최승희처럼 판소리로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다. 최승희는 20세기 초 고전무용의 현대화를 이끈 전설적인 인물로, 오늘날 최초의 한류스타로 평가받고 있다.
KS크레디아를 설립한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이 회사는 K-팝, 드라마, 영화는 물론 미디어, AI까지 아우르는 광범위의 K-컬처 IP 콘텐츠 제작을 통해 세계 월드와이즈 콘텐츠 미디어그룹을 지향하고 있다.
● “내 미래의 모습은 성공한 음악인이자 사업가”
요즘 젊은 국악인들은 확실히 선배들과 달라졌다.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모험과 도전에 나서고 있다.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 국악인, 특히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뛰어난 실력과 독특한 음색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범 내려온다’ 이날치로 대표되는 퓨전국악밴드들도 인기다.국악 드라마 소식도 들린다. 10월 12일 첫 방송을 앞둔 tvN 새 토일드라마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 인기배우 김태리가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목포에서 올라온 정년이로 분한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꾼으로 불린 김정민 명창은 ‘원조 정년이’일 것이다.
판소리의 음색과 창법이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판소리꾼은 다른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부른다고 해도 결국 모든 노래를 판소리 창법으로 부른다”는 오래된 선입견도 산산조각난 지 오래다.
김정민은 “판소리의 깊이가 깊어진다면, 즉 득음(得音)의 경지에 오르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주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했다. 득음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깊이 연마해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굳이 판소리 창법이 아니어도 모든 것을 쉽게 넘나들며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성악가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하루라도 연습을 쉬면 퇴보한다고 하지요. 판소리 역시 매일 갈고 닦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잘 성장시킨다면 제가 하고 있는 이 음악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그리는 제 미래의 모습은 성공한 음악인이자 사업가입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CEO 명창. ‘21세기 최승희’가 되어 판소리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김정민의 꿈은 그의 소리처럼 폭포를 뚫고 전 세계 2억 한류 팬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시러렁 실건~ 당겨주소~ 에이여~어루 당기여라 톱질이야~ 어이쿠! 대박이 났구나!”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