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김승현 기자] “미국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배우 아덴 조에게 단순한 작품 그 이상인 ‘정체성’이 담긴 인생작이다. 그는 다음 챕터로 한국 드라마를 바라보며 “김은숙 작가님 오디션도 보고 싶다”고 밝혀 눈길을 모았다.

아덴 조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동아닷컴과 만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덴 조는 ‘케데헌’에서 주인공 루미(Rumi)의 목소리를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날 아덴 조는 “요즘 한국에 정말 자주 온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아 휴가 때마다 잠깐이라도 한국을 찾는 걸 좋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국 음식도 먹고 마사지도 받는다. 한국어를 계속 배우며 연습하고 있는데, 한국에 있을 때 더 빨리 늘어나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케데헌’은 아덴 조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와 현재는 많은 점이 달라졌을 터. 그는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해서 대본을 보자마자 너무 설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무척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보이스 연기를 할 때 아트 신을 보여주는데, 네 번째 세션쯤 됐을 때 정말 멋진 그림들이 나와서 또 한 번 신났다”고 말했다.

이어 “녹음을 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이 떠올라 너무 재미있었다. 사자보이즈와 소다팝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빨리 공개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며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줄은 전혀 몰랐다. 애니메이션이나 K-팝을 좋아하는 분들만 보실 거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즐겨 주셔서 정말 감동받았다”고 회상했다.


‘케데헌’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많이 실감하고 있다. 유명한 분들이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다’며 반겨 주신다”며 “멀리서 존경하던 해외 유명 배우들이 직접 다가와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고 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참 신기했다”고 말했다.

아덴 조는 미국 텍사스주 애머릴로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2세다. 한인으로서 인종차별을 겪은 경험에 대해 그는 “많이 느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텍사스에서 자랐는데 당시 한국인 가족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어릴 때는 폭행도 많이 당해 병원에 3~4차례 입원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부모님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게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당시 미국 미디어에서 한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학교에 다니며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어를 하지 못해 그들 사이에 쉽게 섞이지 못했다. 나는 미국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온전히 인정받기 어려운 위치였다”며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면 우리의 존재와 인식을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미디어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덴 조는 “이제야 조금씩 변화가 느껴진다”며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K콘텐츠가 훨씬 쉽게 접해지게 됐고, 지난 10여 년간 K팝 스타들이 큰 사랑을 받으며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또 ‘기생충’,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 나오면서 K컬처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다소 어둡게 인식됐다면, ‘케데헌’을 통해 어린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한국의 귀엽고 밝은 문화가 알려진 것 같아 기쁘다”며 웃었다.


‘케데헌’에는 한국적인 요소와 한국어 대사가 곳곳에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아덴 조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다. 한국어가 나올 때 발음이 완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며 “녹음 과정에서 정말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친구들이 미국 작품에서 배우들이 한국어를 하면 어색하다고 이야기하더라. 한국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루미라는 캐릭터의 정당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영어도 완벽해야 하지만 한국어 역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부분을 잘 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덴 조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에게 한국인 캐릭터 루미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는 “루미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면서도 책임감이 크고, 하고 싶은 것과 지켜야 할 사람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 점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어 “‘혼문’을 다룰 정도의 막중한 책임은 아니지만, 동양인 배우로서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루미 역은 저에게 큰 선물이었다. 만약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영화가 있었다면, 조금 더 자신감 있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다 비슷한 아픔이 있다. 이 영화가 성공하면서 그런 마음들이 긍정적으로 확인받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케데헌’을 통해 아덴 조는 세계적인 토크쇼에 출연하며 남다른 말재간을 보여줬다. 이에 대해 그는 “너무 떨렸다. 밖에서 보기엔 배우들이 이런 걸 잘할 것 같지만, 저는 대본이 있으면 괜찮고 인터뷰나 토크쇼처럼 즉흥적인 자리는 어렵다”며 “너무 떨려서 멘붕이 오고, 준비한 말도 다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촬영이 제일 쉽다”며 웃음을 보였다.

또 ‘케데헌’에서 상대역 진우의 목소리를 연기한 안효섭에 대해서는 “매기 강 감독과 한국 드라마와 배우 이야기를 하며 캐스팅 얘기도 나눴다. ‘진우는 누가 맡느냐’고 계속 물을 정도로 궁금했다”며 “안효섭 배우는 영화가 공개된 뒤 시상식에서 처음 만났다. 헌트릭스 멤버들 역시 작품이 나올 때까지 한 번도 못 만났다. 여섯 명이 함께 모인 게 최근이다”며 “영화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이렇게 다 함께 만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아덴 조는 한국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태양의 후예’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스타트업’, ‘도깨비’, ‘더 킹’, ‘시크릿 가든’, ‘응답하라’ 시리즈도 재밌었다”며 “미국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지?’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사극도 정말 좋아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은숙 작가에 대한 팬심도 숨기지 않았다. 아덴 조는 “김은숙 작가님의 엄청난 팬이다. 기회가 된다면 오디션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당시에는 한국어로 자기소개도 못할 만큼 한국어가 어려웠다”며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언젠가는 한국 작품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어를 못하니 그때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도 한국어는 어렵지만, 한국 드라마가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자막을 켜고 봤다가, 자막 없이도 보고, 대사를 따라 읽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배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와 캐릭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멋진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미국 스타일이 아닌, 한국 스타일의 액션으로 ‘여자 버전 제임스 본드’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자매애나 우정을 다룬 이야기처럼 여성 서사 작품도 좋다. 그런데 저는 대본이 좋다면 가리지 않는다. 로맨스도, 액션도 좋고 요즘은 스윗한 이야기에도 마음이 간다”며 “다음 작품이 호러라 어린 관객들이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빨리 귀엽고 밝은 작품도 선보이고 싶다”고 전했다.

아덴 조는 전 세계 아시아계 청소년들을 향한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 힘들게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점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K콘텐츠는 일시적인 트렌드다’ 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어떤 사람들은 K팝이나 K뷰티만 떠올리지만, 한국 사람들은 사랑과 정이 정말 많다. 그런 마음이 스토리를 더 재미있고 끌리게 만드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 감정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