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정승혜 대표.
10년째 연예기자를 하면서 남은 건 여전히 솔로란 현실과 대중이 스타로 부르는 친구들이다. 친구 혹은 좀더 가까운 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당신의 스타를 ‘허민녕 기자의 별다방’에 담는다.
“어, 누나가 좀 하지.”
2005년 여름의 어느 날, 언제나 그랬듯 ‘간다’는 말도 없이 무작정 누나의 충무로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화제는 개봉 중이던 영화 ‘친절한 금자씨’였다. “포스터도 괜찮지 않니?” 누나는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을 때 이렇듯 넌지시 운을 띠우곤 했다. 알아도 모른 척.
“뭐? ‘받은 만큼 드릴께요’ 그 카피 누나가 쓴 거?” 조금은 시니컬하게 말꼬리를 올리면 누나는 숨도 안 쉬고 ‘항상’ 이렇게 받아쳤다. “어, 누나가 좀 하지.”
이 순간, ‘누나’라 부른 이 여인은 정승혜(사진)다.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의 인기 홍보 카피를 썼고, 칼럼니스트로서, 영화제작자로서 ‘좀 했던’ 그녀. 누군가를 추억하며 늘어놓는 관용적인 덕담은 누나가 결코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정승혜를 ‘자신감 하나는 끝내주는 여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한때 기획했던 ‘그날의 분위기’란 영화 제목처럼 컨디션이 영 별로다 싶을 땐 서로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란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잘난 척’이 좀 많았고, 누난 다만 기분이 좀 ‘업’된 것이지 칭찬받아 마땅한 일들만 내게 말했다고 고백한다.
한때 두 사람은 나이를 잊고 ‘싸이질’에 꽂혀 본업만큼이나 열심히 사진이며 글을 미니홈피에 올리곤 했다. 누나와 나는 역할 놀이를 하듯 ‘설정 샷’의 달인이 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때 우리 두 사람의 미니 홈피는 웬만한 연예인의 그것에 버금가는 방문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니 홈피를 향한 내 열정의 유효기간은 딱 1년이었고, 그녀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유지하는 지구력을 보였다. “무슨 애가 1년이 못가니”라고 혀를 차는 그녀에게 나는 ‘누나는 여자고, 나는 남자니까’라고 말도 안 되게 받아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나가 떠난 날, 멍하니 노트북 앞에 앉아 비밀번호를 5번이나 틀려가며 수년간 방치해뒀던 내 미니 홈피에 들어갔다. 왜 그랬지는 모르겠다. 무심코 지인들이 남긴 한 줄짜리 일촌평을 보다가 나는 그녀가 써놓은 글을 이제야 발견했다. “보고프구나, 네 누나가.”
빈소에선 울지 않기로 했다. 누나가 종종 그랬듯 “사내자식이…”라고 그럴까봐 그랬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의 오랜 파트너인 이준익 감독은 약간 취해있었다.
그와 잠시 포옹했고, 이 감독은 등을 툭 치며 내게 말했다. “너 알아? 정승혜가 사랑한 남자들 중 하나였어, 네가.”
나는 결국 나쁜 동생이었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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