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사진제공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사진제공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




20개국 83명 참여…세계 유일 수묵비엔날레 진행 중
해남·진도·목포 삼각 동선, 뿌리·줄기·확장으로 연결
전통 회화부터 미디어 아트까지, 수묵의 재해석 시도
황해 문명권 조명하며 동아시아 미학 국제 무대에 소개
8월 30일 개막한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10월 31일까지 전라남도 해남·진도·목포 일원에서 열린다. 2018년 첫회를 시작으로 4회를 맞는 이번 비엔날레는 동아시아 예술 전통인 수묵을 동시대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국제 플랫폼을 표방한다.

주제는 ‘문명의 이웃들 - Somewhere Over the Yellow Sea’. 황해를 둘러싼 해양 문명권의 교류와 연속성에 주목해, 대륙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다층의 상호작용을 조명한다.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역임한 윤재갑 감독이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으며, 20개국 83명(국내 50명, 해외 3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라남도와 전라남도문화재단이 주최, 주관한다.

전시는 해남–진도–목포를 삼각 동선으로 연결한다. 지역의 역사성과 공간성을 살리면서도 전통과 실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조를 취한다. 핵심 기획 방향은 ‘전통의 재해석과 재료의 확장’. 아시아 수묵의 철학과 조형 언어가 서양 미학, 동시대 예술 언어, 디지털 기술과 만나는 지점을 탐색한다.

‘나팔관’처럼 해남에서 시작한 흐름이 진도를 거쳐 목포로 확장된다. 해남은 뿌리, 진도는 줄기, 목포는 세계화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한다. 윤재갑 총감독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동아시아 회화 미학과 방법론을 국제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식 창구”라며 “광주비엔날레와 전남수묵비엔날레가 협력하여 ‘동시에 따로 또 같이’ 개최된다면 명실상부한 전 지구적 미술행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은 문인화의 수원지라는 성격을 바탕으로 공재 윤두서와 겸재 정선의 작업을 통해 조선 회화 미학과 남도의 수묵 전통을 비춘다. 대표적으로 윤두서의 자화상,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산수도가 소개되며, 시대적 배경과 조형 언어를 해설하는 시각 자료가 함께 구성된다.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은 다산 정약용, 수화 김환기를 비롯해 구성연, 이헌정, 홍푸르메, 로랑 그라소, 린타로 하시구치 등 7인의 작업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연결을 시도한다.

소전 손재형 전시관    사진제공 | 진도 소전미술관

소전 손재형 전시관 사진제공 | 진도 소전미술관


진도는 한국 근현대 서예와 수묵의 맥을 잇는 거점으로 구성된다. 소전미술관은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 석재 서병오, 소전 손재형, 검여 유희강, 철농 이기우, 학정 이돈흥, 목인 전종주 등 8인의 작품으로 문자의 조형성과 필획의 감각을 조명한다.

남도전통미술관은 고암 이응노, 내고 박생광, 산정 서세옥, 남천 송수남, 소정 황창배 등 5인의 작업을 통해 수묵의 추상성과 채색 기법의 실험성을 부각한다. 작가별 고유한 표현을 살린 공간 배치와 명암·색채 대비를 통해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written room’   사진제공 | 목포 문화예술회관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written room’ 사진제공 | 목포 문화예술회관


목포는 세계 수묵의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20개국 63인의 현대수묵 작가들이 전통의 혁신과 재료의 확장을 실험한 작품을 선보인다. 목포문화예술회관은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설치와 영상 기반 미디어 작업 등으로 수묵의 여백·흐름·기운생동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팀랩의 작품은 자연의 움직임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구현해 빛과 영상으로 표현한 ‘움직이는 수묵화’다. 벽과 공간 전체가 화면이 되고, 마치 붓 대신 빛으로, 종이 대신 공간 위에 그려지는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written room’은 페르시아 문자를 벽 가득 반복해 그려 넣는 작업이다. 작가가 직접 현장에서 쓰고, 전시가 끝나면 지워져 사라진다는 점에서 수묵이 지닌 덧없음과 맞닿아 있다. 읽을 수 없는 문자들은 침묵 속에 남아, 잊혀진 기억과 권력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목포 실내체육관 전시 전경

목포 실내체육관 전시 전경


목포실내체육관은 평범한 체육관을 전시장으로 바꿔, 수묵이 가진 재료와 한계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보여준다. 이곳에는 대형 회화와 설치 작품이 전시돼 정체성, 기억, 역사 같은 주제를 수묵의 시각적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인도네시아 작가 마리안토는 신체와 권력 문제를 다루며 수묵을 단순히 서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비판적인 표현 도구로 확장한다. 한국 작가 지민석은 불화(절에서 쓰이는 그림) 형식을 빌려 ‘스타벅스’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전통적 형상과 현대 소비 아이콘을 유머러스하게 연결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해남의 뿌리, 진도의 줄기, 목포의 확장이라는 흐름으로 “왜 남도에서 수묵비엔날레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수묵을 기법이나 재료에 한정하지 않고 자연과 세계를 해석하는 예술 언어로 바라보며, 동아시아 미학의 자율성을 국제 무대에서 선보이는 장을 마련한다. 전통의 혁신과 재료의 확장이라는 키워드 아래 과거와 현재, 철학과 기술이 만나는 수묵의 오늘을 보여줄 예정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