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 허정인의 첼로를 기다리는 시간

첼리스트 허정인

흙향이 물씬한 첼로의 울림이 겨울의 초입을 흔든다. 허정인의 손끝이 우려내는 선율은 이번에도 단단하고 깊을 것이다. 11월 23일 일요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허정인 첼로 리사이틀(Jungin Huh Cello Recital)’은 한 예술가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피아니스트 전세윤이 함께하며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세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번 공연은 각기 다른 시대의 정서와 음색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베토벤의 내면적 긴장, 멘델스존의 서정, 라흐마니노프의 격정이 허정인의 해석 안에서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다. 그는 이번 프로그램을 “기술을 넘어, 스스로의 음악적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첼로를 통해 저만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이에요. 모든 사람이 제 소리를 좋아하진 않아도, ‘이 소리 참 좋다’, ‘듣기 편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실기 수석으로 졸업한 허정인은 도독 후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와 뷔츠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쳤다. 이후 프랑스 리옹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안느 가스티넬을 사사했다.

2021년 롯데문화재단 신진 아티스트에 선정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섰고, 2024년에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을 담은 음반을 SONY Classical에서 발매하며 평론가들로부터 “깊이와 명료함이 공존하는 연주”라는 호평을 받았다.

잘츠부르크 뷔너홀과 라이프치히 슈만하우스 독주회, DMZ 연천국제음악제 협연, 강남심포니·KT심포니·대구시향 등과의 협연까지, 허정인의 첼로는 국경을 넘나들어 왔다.
그는 “빠른 악장은 기술을 보여주지만, 느린 악장은 연주자의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며 “음 하나, 쉼표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야 비로소 진짜 음악이 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쇼트트랙 선수로 훈련을 받으며 몸에 심은 집중력은 지금의 음악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당시 운동을 하며 집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덕분에 첼로를 연습할 때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죠.”

허정인은 현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서울 솔로이스츠 챔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솜니움 트리오 멤버로도 활약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라’라고 늘 말해요. 남의 해석을 베끼기보다, 스스로의 음악을 만들어야 진짜 자신이 드러납니다.”

허정인의 리사이틀은 그 철학의 연장선이다.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그 안의 소리,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을 관객과 나누려 한다.

“음악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요즘 많이 느껴요. 제 연주가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1월의 밤,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를 허정인의 첼로는 관객의 마음 한가운데에 조용히, 그리고 확고히 닿을 것 같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