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에서 인사하고 있는 출연자들

커튼콜에서 인사하고 있는 출연자들



솔오페라단이 무대에 쏟아부은 공력이 첫눈에 느껴졌다. 11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막이 오르자 거대한 무대가 회전하며 순식간에 관객을 16세기 초, 이탈리아 만투아 공국으로 데려갔다.

이날 캐스팅은 ‘리골레토’ 강형규, ‘질다’ 나탈리아 로만, ‘만토바 공작’ 김진훈, ‘스파라푸칠레’ 박의현, ‘막달레나’ 김가영. 알베르토 가잘레의 ‘리골레토’와 캐슬린 김의 ‘질다’가 아닌 점이 아쉬웠지만, 이날의 무대도 괜찮았다.

강형규의 ‘리골레토’는 거대한 분노보다 내면의 상처에 초점을 맞춘 느낌. 이 배역의 교과서와 같은 고성현의 ‘리골레토’가 화염처럼 강렬한 분노를 내뿜는다면, 강형규는 불이 꺼진 재 속의 온기처럼 절제된 감정을 보여줬다. 딸을 지키려는 절박함과 복수의 광기가 균형을 이루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탈리아 로만의 ‘질다’의 노래는 완벽했다. 맑고 단단한 소리로 들려준 ‘그리운 이름(Caro nome)’은 절창이었다. 다만 로만의 체구가 가련한 질다를 연기하기엔 좀 ‘풍부한’ 느낌이라 몰입이 쉽지 않았다.

김진훈의 ‘만토바 공작’은 매혹과 허세 사이를 능숙하게 오갔다.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의 끝부분에서 살짝 흔들림이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무대 매너로 관객의 박수를 끌어냈다.

객석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리골레토의 아리아들은 대체로 길이가 긴 편인데,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로 호응했다. 진심으로 이 작품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자 마르첼로 모타델리가 이끈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분투해 주었다.

솔오페라단의 ‘리골레토’는 고전의 품격과 현대적 감각이 공존한 무대였다. 회전무대와 영상, 정교한 조명 설계가 인물의 심리를 시각화했고, 성악가들은 그 위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랑, 복수, 후회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한국 오페라의 제작력이 ‘이 만큼’ 성숙해졌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