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역의 고은성(왼쪽)과 엘 역의 김준수. 40초의 운명을 사이에 두고 맞선 두 천재의 심리전이 이어진다. 각기 다른 정의를 내세운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사진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역의 고은성(왼쪽)과 엘 역의 김준수. 40초의 운명을 사이에 두고 맞선 두 천재의 심리전이 이어진다. 각기 다른 정의를 내세운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사진제공|오디컴퍼니




5월 25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연장 공연
천재 고등학생과 명탐정의 두뇌 싸움
라이토 고은성, 표정이 보여주는 광기
김준수도 엘의 특징 완벽하게 짚어내
테니스코트 노래 대결 장면 공연의 백미
“째깍.”

극장이 어두워지자 검은 무대 위에 흩어진 하얀 선들이 보인다. 막이 오르자 그것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수백 개의 초침이다. 눈으로 시간이 흐르는 순간이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이 시간에서 시작한다. 이름을 적으면 40초 뒤 죽는다. 그 규칙이 두 천재의 전쟁을 연다.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2015년 국내 초연 당시 애니메이션 원작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고, 이후 시즌을 거듭하며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오디컴퍼니가 선보인 뉴 프로덕션은 연장 공연과 앙코르를 거치며 4년 만에 누적 관객 50만 명을 돌파했다. 단일 프로덕션 기준으로도 이례적 기록이다. 현재는 스페셜 연장 공연이 더해져 5월 25일까지 서울 신도림 소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고 범죄자를 없애겠다고 결심한다.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이다. 그는 점점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를 막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또 다른 천재, 명탐정 ‘엘(L)’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하며 치열하게 맞선다. 총을 쏘는 대신 말을 던지고, 주먹 대신 논리를 휘두른다.

사진제공|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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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은 라이토 역 고은성, 엘 역 김준수 캐스트였다. 3차 라인업으로 합류한 두 배우의 평일 낮 공연이었지만 객석은 거의 가득 찼다. 특정 배우의 이름이 걸린 날이라는 걸 실감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고은성의 라이토는 단단하게 밀어붙인다. 성량이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목소리 안에 확신이 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다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 확신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인물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고은성은 표정 하나로 보여준다. 엘과 마주 서는 장면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팽팽하다.

김준수의 엘은 등장과 동시에 흐름을 가져간다. 구부정한 자세, 생각에 잠긴 손 모양, 시선을 위로 치켜뜨는 습관까지 캐릭터를 정확히 짚는다. 노래가 시작되면 음색이 확실히 귀에 꽂힌다. 차갑지만 건조하지 않다. 계산적인 인물인데도 묘하게 인간적인 온도가 남는다. 두 사람이 테니스 코트에서 노래로 맞붙는 장면은 여전히 이 작품의 백미다. 실제 공은 없지만, 눈앞에서는 분명히 승부가 오간다. 회전 무대와 레이저로 그어진 코트 선이 그 장면을 밀어 올린다.

사진제공|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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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영화처럼 빠르게 전환된다. 3면 LED 화면이 도쿄의 거리와 수사본부, 교실을 쉼 없이 바꾼다. 군중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초침은 반복된다. 시간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때로는 배우만 움직이고 주변 인물은 멈춰 서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시간이 멈췄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원작의 복잡한 추리 과정을 모두 담기엔 160여 분은 짧다. 그래서 일부 장면은 압축돼 있다. 대신 질문은 더 또렷해졌다. “나쁜 사람을 없애면, 그건 정의일까.” 라이토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엘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공연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관객이 각자 판단하라는 식이다.

커튼콜이 이어질 때 박수는 길었다. 평일 낮 공연이라는 사실이 무색했다. 초침 소리는 멈췄지만, 정의에 대한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데스노트’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을지 모른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