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소울 오션의 작품 ‘봄 피어오름’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사람들은 왜 ‘멍’을 좋아할까. 술 먹다 두들겨 맞아서 생기는 퍼런 멍 말고 머리를 비우는 멍 말이다. 일상의 물리적 화학적 소음에서 벗어나 영혼의 피부를 촉촉하게 적시는 데는 역시 수분기 머금은 물멍이 으뜸이다.
가슴속에 사이다 한잔이 필요한 오후. 때 이른 무더위까지 덮쳐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트레스를 풀 겸 휴일에 청평이나 서해안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업무 확인차 연락한 서울관광재단 직원 P씨가 수화기 너머로 손사래를 쳤다.
“국장님, 도로 위에서 스트레스만 대량으로 수확하십니다. 멀리 가지 마세요. 저희 재단이 6월을 맞아 기막힌 서울 수변 명소들을 엄선했습니다. 저희만 믿고 따라오시지요.”
솔깃했다. 내비게이션을 시뻘겋게 물들일 정체선을 떠올리니 당장 목덜미가 뻐근해 왔던 것이다. ‘차 막히면 도루묵’이라는 말은 진리다. 그렇게 하여 반나절 서울 물길 투어가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서대문구 홍제폭포. 홍제천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자 우렁찬 물소리가 먼저 귓전을 때린다. 높이 25m의 거대한 물줄기가 절벽을 타고 시원하게 쏟아졌다. 인공폭포지만 주변 지형과 자로 잰 듯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방울을 보고 있으니 가슴속 막혔던 사이다 병뚜껑이 뻥하고 날아갔다.
“P씨, ‘홍제’ 폭포를 직접 보니 오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이 드는군요.”
내가 회심의 개그를 던지자 P씨가 웃었다(고맙습니다!).

카페폭포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홍제폭포.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폭포를 감상했다. 도심에 이런 수변 문화공간이 있다는 건 시민에게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P씨를 따라 옆 건물로 향했다. 최근 개관한 복합문화센터라고 했다. 1층 미디어전시관에서는 홍제폭포의 사계절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푸른 물길과 꽃들이 어우러진 대형 화면이 눈을 즐겁게 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과거 채석장으로 사용하던 용마산 자락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깎아지른 암벽의 거대함에 압도당했다. 51.4m 높이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용마폭포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청룡폭포, 우측에는 백마폭포가 삼중주를 연주하고 있었다.

용마폭포공원 전경.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나의 감탄에 P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친 암벽과 푸른 숲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죠? 이 인공폭포는 평소 하루 두 번 가동합니다. 하지만 무더위가 깊어지는 6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는 오후 5시 타임이 추가돼 하루 세 번 물줄기를 내뿜습니다. 그늘에 앉아 폭포 바람을 맞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습니다.”
인공암벽장과 황톳길도 잘 갖춰져 있었다. 맨발로 걸으며 자연을 만끽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세 번째 목적지는 노원구 수락산 벽운계곡. 지하철에서 내려 단숨에 청정 계곡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명소다. 바위에 새겨진 ‘벽운동천(碧雲洞天)’이라는 글자가 세월의 깊이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자니 맑은 물소리가 청아하다.

‘벽운동천’과 ‘국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계곡 바위.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수락산 벽운계곡의 풍경.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내가 신발을 벗으려 하자 P씨가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하류는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 놀기 좋습니다. 상류 신선교 부근에는 선녀탕도 있지요.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늘에 누워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피로가 싹 달아납니다.”
이어서 조금 멀리 떨어진 은평구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계곡으로 이동했다. 은평한옥마을을 지나자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맑은 물이 바위 사이를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당장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이 거울처럼 맑군요. 한번 들어가 봐도 됩니까?”

진관사 계곡.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여기서는 참으셔야 합니다. 국립공원 보호구역이라 위쪽 계곡은 출입이 제한되거든요. 특히 매년 2월 말부터 6월은 양서류 산란과 번식기라 통제됩니다. 본격적인 물놀이는 7월부터 가능하고요.”
내가 아쉬워하자 P씨가 하류를 가리켰다.
“그 아쉬움은 하류에 있는 마실길근린공원에서 달래시면 됩니다. 거기는 가벼운 물놀이가 가능하거든요.”

마실길근린공원의 은행나무 쉼터.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오후 7시가 넘어가자 서울이 불빛으로 도시에 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P씨는 투어의 “오늘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곳”이라며 청계천 광교 아래로 나를 인도했다. 미디어아트 ‘청계 소울 오션’이 연출하는 디지털 바다였다. 많은 시민이 수변 보행로에 앉아 빛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청계 소울 오션 벚꽃잎 날리는 영상.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도심 한복판에 이런 신비로운 바다를 숨겨두었군요.”
나의 감탄에 P씨가 귀띔했다.
“6월 둘째 주부터는 간송미술관과 협업해서 ‘조선의 풍류’라는 새 작품을 선보입니다. 6월부터 8월 사이에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불을 밝히니 퇴근길에 들르기 좋습니다.”

바다를 걷는 듯한 하늘길 미디어아트.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P씨가 옳았다. 멀리 갈 필요 없었다. 휴일 고속도로 위에서 스트레스 위에 스트레스를 쌓는 대신, 서울의 물길을 걸으며 뇌를 맑게 리부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정성껏 마련한 도심 물소리 지도와 디지털 파도는 지친 일상에 찰찰 넘치고 남을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아주 좋았어. 이제 일하자!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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