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디자이너 출신 카이라 김 작가가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있는 ARTFIN 갤러리는 6월 9일부터 6월 15일까지 카이라 김 작가의 개인전 ‘중첩된 감정의 연대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오랜 기간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한 작가가 순수예술로 조형 세계를 넓히며 내면에 쌓인 감각을 독자적 기법으로 시각화한 작품을 모았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섬유미술과와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 의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후 LG 디자인센터에서 약 25년간 활동하며 제품 디자인과 기획 분야를 지휘한 전문가다. 세계적 권위의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대중의 감각과 시장의 동향을 정확하게 읽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퇴사 후에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조형 언어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로 산업디자인의 구조적 감각과 순수예술의 깊이가 교차하는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카이라 김 작가의 작업은 기존 회화와 구별되는 ‘축적-조각-재결합’이라는 고유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캔버스 위에 안료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쌓은 뒤 굳어진 표면을 조각칼로 깎아내고 분리된 단면들을 다시 섬유 조직처럼 엮어 새로운 구조로 만든다. 겹겹이 쌓인 물감 층은 내면에 침전된 수많은 감정을 은유한다.

작가는 정성껏 쌓은 색의 지층을 조각칼로 파고들며 캔버스 위에 물리적인 균열을 낸다. 색이 쌓이는 시간을 해체하는 날카로운 조각 행위는 삶의 아픔이나 예기치 못한 파편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해체 이후에 나타나는 치유 과정이다.

작가는 조각칼로 파내어 떨어진 흔적을 방치하지 않고 파편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다시 얽고 교차시키며 화면을 새롭게 짠다. 과거를 다독이고 시간과 화해하려는 고유한 수행적 의식이다. 상흔마저도 서로를 지탱하는 견고한 질감으로 변모한다. 이는 기법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감정이 물질 안에서 생성되고 해체되며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ARTFIN 갤러리 이정화 관장은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켜켜이 쌓이고 깎이고 다시 엮인 저마다의 풍경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감정의 경험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경이롭고도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의 정교함과 순수예술의 깊이가 캔버스 위에서 치유의 손길로 완성됐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