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슬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주행사장의 피라미드 형태 주제섬 건축물. 섬의 원초적인 형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박람회 기간에 외벽은 미디어파사드 상영, 내부는 전시관으로 운영된다. 여수 | 양형모 기자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서해 보령 섬 투어에 이은 섬 투어 제2탄이다. 이번엔 남쪽으로 간다. 스케일이 다르다.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범정부 부처가 대대적으로 지원 사격에 나선 대사건이다.
축제 준비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대한민국 해양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꿀 거대한 여정의 출항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초로 ‘섬’을 주제로, 무려 7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가 그 주인공이다.
고민에 빠졌다. 주행사장인 돌산 진모지구의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먼저 보러 갈까. 아니면 개도와 금오도 같은 부행사장의 살아있는 자연을 먼저 눈에 담아볼까. 두 갈래 길 앞에서 멈춰 섰다. 어느 쪽을 택해도 두고 온 반대편이 밟힐 게 뻔하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새벽 2시에 끓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라면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다도해의 푸른 스카이라인과 싱싱한 남도의 미식을 1박 2일에 모조리 품을 수 있는 우아하고 역동적인 동선을 찾아냈다. 설레는 마음을 묵직한 백팩에 눌러담고는, 김포공항발 여수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먼저 발걸음이 닿은 곳은 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야심 차게 열어둔 팝업스토어 홍보관이다. 여수 롯데몰 내부에 둥지를 틀어 놓았다. 홍보관에 들어서자 이번 축제의 마스코트이자 수많은 섬들의 정겨운 연대를 상징한다는 귀여운 캐릭터 ‘다소미’ 인형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곳에서 브리핑을 들으며 확인한 숫자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당초 200억 원 규모의 한 달짜리 행사로 기획되었던 축제였다. 하지만 섬이 가진 생태적 가치에 주목한 국가적 결단이 내려졌다. 700억 원의 예산과 국내 관람객 291만 명, 해외 관람객 9만 명을 포함해 무려 300만 명의 인파를 끌어모을 메가톤급 국제축제로 환골탈태했다. 전 세계 30개국과 주요 국제기구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까지 완벽하게 짜였다.

요트들이 정박돼 있는 국동항 선착장. 여수 | 양형모 기자

박람회 기간 운영되는 해상 교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수환 섬박람회지원단장. 여수 | 양형모 기자
정 단장은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염려 붙들어 매셔도 좋습니다. 현재 여수 관내의 16개 전문 요트 업체가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박람회 기간에 무려 116대의 요트 자원을 대거 투입하니까요. 평소 일반 대중이 이런 최고급 요트 투어를 경험하려면 1인당 최소 3만 원에서 4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박람회 기간에는 여수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더해 관람객 누구나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카타마란 요트에 몸을 싣는 파격적인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입이 벌어졌다. 일반 요트 요금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격이다. 전국의 알뜰 여행족들이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릴 만한 혜택이다. 국동항 임시 주차장에 차를 대고 50인승 대형 요트에 탑승하면 편도 50분 만에 주행사장 후문과 곧바로 연결되는 전용 프리패스 게이트로 진입한다. 도로 위에서의 극심한 교통 체증을 완벽하게 우회할 수 있는 것이다.
KTX에서 내려 곧장 진입할 수 있는 엑스포역 인근 박람회장 선착장에서도 70인승과 50인승 요트 7대가 상시 운항한다. 단 30분 만에 축제의 중심부로 관람객들을 이송한다. 해상 교통의 대혁신이다.
이제 나도 요트를 타 볼 차례다. 바다 위를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돌고래 같은 대형 카타마란 요트에 몸을 실었다. 데크 위로 바람을 가득 머금은 거대한 돛이 펼쳐졌다. 아시안게임 요트 금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박길철 전남요트협회 전무이사가 마이크를 잡고 직접 안전 교육을 유쾌하게 이끌었다.

여수 | 양형모 기자
뼈 때리는 유머와 베테랑의 포스에 승객들 사이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짐벌에 스마트폰을 단단히 끼우고는 선상 투어를 만끽했다. 갑판을 지나 요트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계단을 따라 선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바깥의 무더위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쾌적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정갈한 원목 톤으로 마감된 거실 공간이 나타났다.

요트 내부. 식탁, 싱크대, 소파 등이 배치돼 있다. 여수 | 양형모 기자

요트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공간. 침실, 화장실은 물론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여수 | 양형모 기자

요트가 푸른 물살을 가르며 당도한 돌산 진모지구의 주행사장은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되던 침수나 태풍 대책에 대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듯 견고하고 웅장한 위용을 갖춰가고 있었다.

주행사장의 야외 공연시설. 바다를 면하고 있어 저녁이 되면 황홀한 노을을 볼 수 있다. 여수 | 양형모 기자
“행사 부지는 설계 단계부터 해수면 위로 최소 5m 이상 높게 다져졌기 때문에 기습적인 100mm의 폭우가 쏟아져도 고인 물이 즉각적으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완벽한 자연 배수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 고임이나 침수 현상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죠. 또한 해안가 특유의 강한 태풍과 기상 이변에 철저히 대응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는 모든 대형 가설 텐트 구조물들은 대한민국 일반 건축 기준인 초속 35m를 훌쩍 뛰어넘어, 초속 40m의 기록적인 강풍과 돌풍을 완벽하게 버텨내도록 와이어 프레임을 촘촘하게 보강하고 바닥면에 두꺼운 콘크리트 기초 타설 공사를 준공하는 등 방재 대책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니 관람객들이 발을 디딜 모든 공간의 안전과 쾌적함에 있어서는 단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조직위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주 행사장. 여수 | 양형모 기자
행사장은 총 8개의 테마 전시관으로 구성된다. 어린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득한 보물섬과 섬의 생활상을 담은 문화섬, 지역의 신선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맛보는 식당 마켓 등이 임시 건물 텐트에 들어선다.
해양생태섬 전시관은 거대한 디지털 고래의 깊은 울림과 실제 바닷속에 들어온 듯한 생생한 입체 음향을 재현한다. 기후변화 위기로 병을 앓고 있는 섬들의 실상과 해양 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인류가 어떻게 바다를 지켜내야 하는지 생태적 메시지를 던진다.
미래섬 전시관에서는 미래형 친환경 대중교통수단이자 해양 영토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도심 항공 교통의 핵심인 UAM 기체의 실제 구동 메커니즘과 미래 섬 도시의 모형을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종기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주행사장 피라미드 건물 앞에서 조성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수 | 양형모 기자
여기에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국제슬로시티연맹 등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과 국내외 유수 지자체들이 대거 참여해 비즈니스 상담회와 수출 바이어 상담회를 동시에 개최하는 산업적 풍요로움까지 갖추게 된다.
이처럼 방대한 전시 콘텐츠와 축제의 연출을 총괄 지휘하는 인물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뮤지컬 ‘맘마미아’, ‘시카고’ 등의 흥행을 이끌었던 박명성 총감독(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다. 그는 개막식 하루만 화려하게 주목받았다가 사라지는 기존 지역 축제들의 문화 관행을 과감히 타파했다.
거문도의 전통 설화와 민속 자산인 신짓기 소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대형 주제 공연을 기획했다. 3000석 규모의 특별 공연장에서 박람회 기간 두 달 내내 상설 공연 형태로 무대에 올려진다. 전 세계 30개국에서 찾아온 민속 공연단의 다채로운 문화 공연과 지자체 초청 공연, 그리고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상설 기획 공연은 축제장을 찾는 이들에게 매일 새로운 문화적 볼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이외에도 여수 엑스포장에서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웹드라마 영화제가 개최되며 해조류 등을 이용한 남도 특유의 김밥 페스티벌을 열어 다채로운 먹거리를 선보인다.
국제 학술 행사도 마련된다. 세계 30개국의 섬 관련 전문가들과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세계섬도시대회와 국제선포럼이 열린다. 조직위는 이 학술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섬 관련 국제 포럼 중 가장 권위 있는 포럼으로 육성해 나가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구축된 30개국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향후 대한민국이 세계 박람회를 유치할 때 소중한 외교적 자산이자 확실한 우군이 되어줄 것이다.
행사가 끝나면 가설 텐트들은 깨끗하게 철거되지만, 약 19만8000㎡의 부지에 대대적으로 식재된 대형 기후변화 숲과 도시 숲 정원, 대형 야외 공연 인프라는 고스란히 영구 보존되어 자연 친화적인 정원 공원으로 상시 개방되는 동시에 주민들을 위한 파크골프장 등 사후 휴식 공간으로 온전히 환원된다.
하지만 여수가 지닌 진정한 경쟁력은 정형화된 전시장이 아니라 오랜 세월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간직한 섬 생태계 그 자체에 있다. 행사장을 떠나 진짜 여수의 속살을 느껴볼 시간. 돌산 끝자락, 거대한 기암괴석이 거북이 형상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향일암 탐방로로 발길을 옮겼다.

향일암에서 만난 사슴벌레. 여수 | 양형모 기자
기다리던 저녁시간. 미식가의 성지답게 여수 명물 돌문어삼합이 압도적인 비주얼을 뽐내며 등장했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바다가 조망되는 야외 광장 테이블에서 무쇠 불판이 달구어지고 그 위로 싱싱한 전복과 문어, 얇게 썬 대패삼겹살, 향긋한 부추, 노란 단호박이 붉은 비법 양념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갔다.

입보다 눈이 먼저 포식을 하게 되는 돌문어삼합. 여수 | 양형모 기자

여수의 명물 야간 해상케이블카. 여수 | 양형모 기자
이튿날 아침, 여정은 이번 박람회의 강력한 킬러 콘텐츠이자 부행사장인 금오도와 개도로 이어졌다.
부행사장 중 하나인 개도에는 68동 규모의 대형 캠핑 사이트가 조성되어 일반 캠핑은 물론 차량이 직접 도서에 진입해 차박을 즐길 수 있는 캠핑카 전용 인프라가 가동된다. 유수지에서는 카약과 다채로운 해양 레포츠 체험 프로그램이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자연이 형성한 비렁길 숲 터널. 여수 | 양형모 기자

금오도 비렁길 코스의 끝자락에서 만난 섬 힐링밥상은 이번 여정의 화룡점정이다. 박람회 기간 동안 관람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상한 가격을 최대 1만5000원으로 통제한다는 이 상차림은 차려진 구성부터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섬 힐링밥상은 섬마다 특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오도 여남식당 사장님은 현지에서 능생이라 부르는 능숭어 구이와 쫄깃한 광어를 접시에 두툼하게 썰어 내왔다. 여기에 일반 식당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갯바위 절벽에서 손으로 직접 뜯어낸다는 절벽 따개비와 독특한 부채 모양의 부채손, 구방소라, 군보, 대말, 고동으로 한 상 가득 채웠다.

금오도 여남식당의 섬힐링밥상. 1인당 1만5000원짜리 4인상이다. 여수 | 양형모 기자
아무리 훌륭한 축제라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소용없다. 여수시와 조직위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분야가 바로 대규모 인파를 정체 없이 소화할 광역 교통망 분산 대책과 파격적인 인센티브다.
박람회 기간 동안 외지 관람객이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탑승할 경우 여객선 운임의 50%를 시에서 파격적으로 할인 지원한다. 섬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 섬에서 20만 원 이상 소비하고 1박을 하는 여행객들에게 최대 10만 원을 지역 화폐로 보전해 주는 파격적인 반값 섬 여행 프로젝트도 가동한다.
부행사장인 개도와 금오도에는 관람객들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오후 8시까지 주요 관광지와 행사장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무료 순환 셔틀버스가 상시 대기한다.
이왕 나온 김에 교통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박람회 기간 여수에는 외곽에서 진입하는 차량의 혼잡을 막기 위해 시내 전역 20개소에 총 9600여 대 규모의 대형 임시 주차장이 선제적으로 구축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관람객을 실어 나를 무료 셔틀버스 100대 이상을 집중 배치하고 도로의 혼잡도를 지능형 교통안내 시스템과 연계해 실시간으로 제어한다.
아울러 정부 부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전라선 KTX 및 SRT 열차의 특별 증편을 이끌어냈다. 현재 하루 왕복 3회에 불과하던 여수-김포 간 비행기 노선을 하루 왕복 5회까지 과감하게 확대 재편해 전국 단위의 접근성을 확보했다. 불친절과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여수시가 중심이 된 대대적인 자정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1300여 개의 숙박 시설과 민박 이불 정비 등 수용 태세도 끝마쳤다.
다도해의 해풍과 푸른 섬의 아늑함을 오감으로 가득 입힌 1박 2일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여정은 잘 닦여진, 세련된 축제장 하드웨어를 목격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바다는 인간을 품고, 인간은 바다에 기댄다.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완벽한 영토를 찾아냈다. 이보다 짜릿한 수확은 없다.
초속 40m 강풍을 이겨내도록 설계된 철저한 방재 대책부터 섬 주민들의 정성이 깃든 삼시 세 끼 밥상까지. 여수의 섬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섬과 바다가 어우러져 완공한 자연의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질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눈부신 잔치가 코앞이다.
여수 |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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