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하키협회 양성진(56·사진) 사무국장은 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가맹 경기단체 사무국장들 가운데 최고참이다. 1981년부터 27년간 하키협회의 살림을 이끌며 한국하키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다. 경기인 출신 사무국장이라 선수·코칭스태프의 신망도 두텁다. 하지만 양 국장에게도 선수단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하키는 강력한 금메달후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결승에서 호주에게 0-2로 분패한 후, 대표팀은 4년간 칼을 갈았다.
A매치 101경기에서 127골을 기록한 ‘세계여자하키 역사상 최고의 골게터’ 임계숙은 은퇴도 미뤘다. 장은정과 골키퍼 유제숙 등 다른 멤버들도 화려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대표팀은 홈팀 스페인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4골 차가 날 만큼 대표팀의 기량은 월등했고, 게다가 당시까지 6연승을 거둬 스페인은 한수 아래였다. 조지 알카버 스페인하키조직위원장은 양 국장에게 “스페인과 만나게 되면 한 번만 봐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 양 국장은 ‘스페인쯤이야…’하는 생각에 “살살 뛰어주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여자하키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강호 호주와 네덜란드가 예선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라이벌들이 떨어지자 양 국장은 쾌재를 불렀다. 대표팀은 4강에서 스페인과 만났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선취골까지 허용했다. 양 국장의 속은 타들어갔다. 임계숙이 후반전에 동점골을 터트려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대표팀의 슛은 연이어 골대를 맞혔다. 스페인 골키퍼는 신들린 듯 선방했다. 결국 대표팀은 단 한번의 위기에서 골을 허용하며 1-2로 분패했다. 김이 빠진 대표팀은 3∼4위전에서도 영국에 무릎을 꿇었다.
양 국장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나 때문에 졌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경기를 앞두고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여자하키는 어떤 팀을 만나도 해볼 만하다”면서 “금메달까지 노릴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말이 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