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 1m80서꺾인창공의꿈‘인간새’,완전히새됐어~

입력 2008-06-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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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2회 전국육상선수권 여자장대높이뛰기. ‘샛별’ 임은지(19·부산연제구청)는 한국기록(4m11) 보유자 최윤희(22·원광대)에 이어 2위(3m80)를 차지했다. 장대를 잡은 지는 얼마나 됐냐고 물었다. “넉 달이요. 바를 넘을 때 너무 짜릿해서 흠뻑 빠져있어요.” 얼핏 보기에도 힘든 운동, 하지만 ‘넉 달’이라는 말에 도전의식이 꿈틀거렸다. ○ 장대높이뛰기는 육상의 꽃묶음 장대높이뛰기대표팀 김철균(40)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에는 무리죠. (임)은지는 7종경기(100m허들·200m·800m·높이뛰기·멀리뛰기·포환던지기·창던지기)를 했으니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겁니다.” 대표팀이 연습을 하고 있는 울산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김 코치는 한국의 ‘세르게이 부브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과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5번이나 한국기록을 새로 쓴 최윤희도 함께 했다. 울산고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이 유니폼을 준비해줬다. 레슬링 선수들이 입는 타이즈처럼 몸에 딱 붙는다. “전신수영복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시키기 위함이다. 육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운동능력을 겨룬다. 육상의 꽃을 100m라고 한다면, 장대높이뛰기는 모든 육상의 꽃들이 조화된 꽃다발과 같다. 도움닫기의 스피드, 장대를 찍고 도약할 때의 근력과 순발력, 공중에서의 유연성과 조정력 등이 종합적으로 요구된다. 김철균 코치는 “부브카는 100m 기록이 10초2, 멀리뛰기 기록이 8m20였다”면서 “10종 경기에 출전하더라도 세계기록을 세웠을 것”이라고 했다. 김 코치 역시 선수시절 100m기록이 10초5까지 나왔다. ○ 직선운동을 수직운동으로 몸 풀기 달리기로 체온을 높인 뒤 스트레칭은 필수. 장대를 20cm 깊이의 폴 박스에 찍는 순간 허리에 엄청난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장대 선수들은 허리 부상이 잦다. 장대 잡는 법부터. 장대는 선수에 따라 길이와 강도가 다르다.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장비의 장팔사모를 범인들은 함부로 들 수 없는 것과 같다. 더 길고, 더 강한 장대를 쓰면 높게 나는데 유리하지만 자신의 운동능력이 장대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최윤희는 4m30에 강도 66kg, 김 코치는 선수시절 4m90에 강도 94kg짜리를 썼다. 부브카 같은 대장군은 5m20에 강도 100kg짜리를 휘둘렀다. 일개 훈련 병졸이 드는 장대는 3m80에 강도 54kg. 장대를 길게 잡으면 높게 뛸 수 있지만 조정이 불안하다. 어깨넓이로 양 팔 간격을 유지하고 장대를 짧게 잡았다.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는 스피드를 위한 달리기와는 다르다. 무릎을 높여서 몸의 탄성을 늘려가면서 뛴다. 머리가 젖혀지면 브레이크가 걸린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상체를 앞으로 민다는 느낌으로 달린다. 미니허들을 넘으며 감을 익인 후, 장대를 잡고 도움닫기 연습에 돌입했다. 장대는 역학적으로 도움닫기의 직선운동을 손실 없이 수직운동으로 전환해야한다. 장대를 쭉 앞으로 빼면서 찍어야 발을 구르기 직전까지 스피드를 살릴 수 있다. ○ 두려움을 전율로 점심 식사 후 울산고로 이동. 실전돌입이다. 최윤희는 “기초훈련 후 바를 넘기까지 2주가 걸렸다”고 했다. 김 코치는 “육상에 처음 입문했다면 6개월은 훈련을 해야 바를 넘게 한다”고 했다. 일단 목표는 2m. 김 코치가 중학교 3학년 때 장대에 입문해서 처음으로 넘은 높이다. 보통 선수들은 30∼40m에서 도움닫기를 하지만 초심자들은 뛰는 동안 자세가 흐트러지기 십상. 바를 설치하지 않고 4보에서 뛰었다. 세상과 내가 만나는 것은 오직 장대를 통해서다. 장대를 찍으면서 구부려 가슴으로 몸을 밀어 올린다. 허리, 등, 가슴, 배 근육이 주로 쓰인다. 부브카는 150kg짜리 벤치프레스를 가뿐히 들어 올릴 정도로 상체 힘이 좋았다. 공중동작을 제대로 하려면 발을 공중으로 차올려야 하지만 머리가 땅을 향한다는 것이 두렵다. 최윤희는 “매트 반대 방향으로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가는 선수도 봤다”고 했다. 김 코치도 잘못 떨어져 기절한 적이 있었다. 바를 설치했다. 1차는 1m55. 3차시기 안에 넘어야 한다. 공중에서 몸을 돌리며 바를 넘는 스윙동작은 할 능력도 안 되지만, 할 필요도 없는 높이다. 떴다. 다리를 바 위로 넘겼다. “와아.” 김 코치의 탄성. 넘은 게 확실하다. 하지만 바가 떨어졌다. 몸은 넘어갔지만 장대가 쓰러지면서 바를 건드렸다. “충분한 높이를 뛰고도 마무리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장대를 마지막까지 컨트롤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윤희가 오른손에 야구선수들이 쓰는 ‘끈끈이’를 뿌려줬다. 장대가 손에 더 밀착됐다. 2차에서 성공. 1m70도 2차에서 넘었다. 1m80도전. 장대높이뛰기는 3차시기 안에만 성공하면 무한횟수로 도전할 수 있다. 자기 신장 이상부터는 장대에 매달려 비스듬히 물구나무 서는 동작이 필수. 하지만 중력은 자기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1m80은 높이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못 오를 나무, 쳐다만 보지는 않았다. 규정을 무시하고 2m에 상향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 최윤희는 “바를 넘기 전까지는 두렵지만 바를 넘는 순간 두려움이 전율로 바뀐다”고 했다. 바를 넘고 허공에서 매트로 떨어질 때 바라보는 하늘, 김철균 코치는 “몸은 중력 때문에 아래로 향하지만 마음은 하늘 위에 큰 구멍이 생겨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감내할 것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김 코치는 “모험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장대높이뛰기의 문을 두드려도 좋다”며 웃었다. 울산=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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