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재킷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림 속 눈과 코는 조규찬의 것이다.
조규찬은 재킷의 의미를 “원작에 ‘나’ 라는 사람이 조금씩 스며들었다는 의미로 자화상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조용했던 그가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다. 타이틀은 이해하기 쉽게 ‘리메이크’다.
수록곡도 눈길을 끈다. ‘흩어진 나날들’ ‘날 위한 이별’ ‘그리움만 쌓이네’ ‘인디언 인형처럼’ 등 여자가수들의 곡으로만 앨범을 빼곡히 채웠다.
“리메이크라는 게 잘못하면 중간도 못 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작업이잖아요. 리메이크는 마음없이 접근하면 원곡을 해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목 앞에 원곡자 이름을 넣은 건 그 분들에 대한 저의 존경심입니다.”
“최대한 힘을 빼고 작업했다”고 말했지만 곡마다 ‘조규찬’이라는 필터를 거친 느낌이 강하다. 얼마 전 쥬얼리의 서인영이 불러 화제를 모은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는 조규찬 스타일로 재탄생해 듣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이미 있는 향수의 토대 위에 조규찬의 숨결을 첨가한 거예요. 즐겁게 작업했어요.”
조규찬은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사실 그가 ‘리메이크’를 결정하기까지 녹록치 않은 3년이 숨겨져 있다. 첨단의 트렌드와 테크놀로지로 짙게 화장한 음악이 주류인 요즘, 그는 수공예적인 아날로그 음악을 고집해 왔다. 이런 그가 뜻밖에 ‘망할’ 위험이 적은 리메이크 앨범을 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많은 돈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2005년 이후 제가 번 돈이 연봉으로 따지면 회사 평사원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낮아요. 광고도 안 하고 행사도 안 하니까요. 낭비벽이 없으니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회사도 함께 일을 하고 있잖아요. 가족도 있고.”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진 않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공백기 동안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마주앉아서 인기가수가 되서 돈 많이 벌고 사는데 집중하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들죠. 아이요? 아무래도 음악가 집안이어서 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소한의 교육만 시킬 거예요. 피아노만 가르쳐놓고 음악은 선택하게 하려고요.”
‘욕심이 없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조규찬. 앨범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돈과 옆을 지켜주는 가족, 그리고 자기 음악으로 인해 크건 작건 쉼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100만 장을 팔지 못했다고 그 앨범이 가치가 없는 것 아니에요”라며 “내 음악으로 단 열 사람의 마음이라도 치유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