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팬들에겐 ‘장샘’과 ‘안샘’으로 불리는 두 스타가 있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한 ‘샘’은 현역 유니폼을 벗었고, 또 다른 ‘샘’은 SK로 이적했다. 1992년 입단 동기인 두 사람은 OB시절부터 두산의 영욕을 함께 하다 이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장샘’은 장원진(40)이요, ‘안샘’은 안경현(39)이다. 장원진은 사실상 2007시즌부터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
‘등록상 선수’였지만 후배들 뒷바라지에 더 큰 시간을 할애했고, 작년 시즌은 1군 경기 출장이 전혀 없었다. 홈인 잠실구장에선 선수라커가 아닌 코치라커를 썼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서류상 선수’에서 최종 은퇴한 장원진은 이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에 나섰다. 2월 1일부터 미야자키에서 펼쳐지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2군에서 ‘코치 수업’에 들어갔다.
4월 말까지다. 그 후에는 두산에 복귀, 원정기록원이나 스카우트 업무 등 프런트 수업을 통해 또 다른 길에 들어선다. 17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접고,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장샘’을 만났다.
○시원섭섭,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인천 신흥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입었던 선수 유니폼. 정확히 30년을 입었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시원섭섭하다’는 자신의 표현대로, 많은 생각으로 복잡하다.
끝까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그래도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코치 같은 선수’로 있다 이제 새로운 길에 들어선 그의 솔직한 마음이다.
○커트의 귀재
2002년 시즌 중반으로 기억한다. 2사 1·2루에서 한화 용병투수 레닌 피코타와 만나 풀카운트 접전 후 줄곧 커트만하다 16구까지 승부가 이어졌다.
1루 주자는 후배인 김동주. 풀카운트라서 매번 스타트를 끊었던 김동주는 마침내 장원진의 적시 2루타 때 홈 플레이트까지 밟았지만 나중에 숨을 헐떡이며 한마디 하더란다.
“차라리 삼진을 당하지. 다리가 풀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이처럼 ‘맞히는 재주’가 있는 선수였다. 한때 투수들이 상대하기 제일 싫은, 차라리 볼넷을 내주고 싶은 타자가 바로 장원진이었다.
○데뷔 첫해, 2군의 추억
인하대를 졸업한 뒤 의욕적으로 뛰어든 프로무대, 그러나 첫해 대부분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나도 야구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찾아온 좌절.
그는 그 시간을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고교 시절까지 우타자로 뛰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스위치 히터 연습을 했는데, 그 도전을 다시 시작한 게 바로 루키 때였다.
‘쟁쟁한 선배들이 있는데 나는 별로 내세울게 없다’는 절박함은 이를 악물게 했고, 그는 훗날 한국 프로야구에서 몇 안되는 ‘능력 있는 스위치히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잊을 수 없는 2001년의 기쁨
장원진의 전성기는 2000년이었다. 그해 170안타를 때려내며 최다안타왕을 차지했다. 프로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타이틀. 그보다 더 기뻤던 건 바로 이듬해였다.
2000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3승4패, 아쉽게 준우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