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Black&White]한국기원‘입’은없고눈치만있다?

입력 2009-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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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바둑판소송’공식논평없이버티기…일부선“윤기현9단에끌려다녀”지적도
지난해 바둑계 최대의 오점으로 남은 억대 바둑판 소송사건을 기억하시는지. 프로기사 윤기현 9단이 본인 말로 ‘30년 우정을 나누었다’던 고(故) 김영성(전 부산바둑협회 본부장)씨의 유족과 바둑판 두 조, 바둑알을 놓고 벌인 이 희대의 법정싸움은 부산지법과 부산고등법원에서 모두 유족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마침표를 찍는 듯했으나, 작년 12월 17일 윤9단이 대법원에 상고 접수를 함으로써 바둑판 공방은 ‘현재 진행형’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본지를 비롯 각종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었고, 바둑팬들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윤9단의 처사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낀 누리꾼들은 프로기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바둑계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 윤9단에 대한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러나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은 아직까지 일언반구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면 어김없이 해오던 ‘버티며 시간끌기’란 전가의 보도가 다시금 등장했다는 느낌만 줄 뿐이다. 한국기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윤9단의 문제를 프로기사들로 구성된 기사 대의원회와 한국기원 임원회에서 논의했으며, ‘일단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지켜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지난 1월 허동수 이사장 주재로 열린 이사회에서도 ‘프로기사들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이 나와 모든 일은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루어졌다. 한국기원의 발 느린 대응에는 여러 밝히기 힘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중 하나는 윤기현 9단이 한국바둑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위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는 한국기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힘’을 지녔고, 여러 굵직한 기전 창설에도 관련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한국기원이 윤9단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다. 한국기원이 내심 윤9단의 거듭된 악수에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윤9단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는 정황은 여기저기에서 쉽게 발견된다. 실제로 윤9단이 항소를 결정했을 때 한국기원의 한상렬 사무총장이 극구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9단은 항소를 했고, 지난해 4월 14일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기자들은 이날 회견장에 한 총장이 윤9단과 나란히 나타나자 의아함을 떨치지 못했다. 윤9단의 개인적인 요청으로 배석했다는 한 총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유족 측이 생계비와 고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윤9단에게 바둑판 판매대금을 요청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윤9단을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내용은 동영상으로 알려지면서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단체의 총장이라면 자신이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정도는 알아야했지만 예상됐던 비난을 감수하고 참석했던 그의 속내가 궁금할 뿐이다. 한국기원이 윤9단의 문제를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뤘다면, 그런 사실 역시 팬들에게 공지하고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울러 한국기원은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전가의 보도’가 거꾸로 자신들의 목줄기를 노리게 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팬들은 지금 이 순간도 눈에 시퍼렇게 불을 켠 채 한국기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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