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광부 2명 살려…커피믹스 다시 봤다”

입력 2022-11-0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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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구조대가 구조된 광부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두 명의 광부는 모닥불로 체온을 유지하고 커피믹스 30봉지를 나눠 마시며 221시간을 버틴 끝에 기적처럼 구조됐다. 사진 | 뉴시스

기적의 생존 아이템이 된 ‘커피믹스’

봉화 광산 고립된 광부, 221시간 만에 구조
갖고 있던 커피믹스 30봉지 타마시며 버텨
은근 높은 열량·필수 영양소 함유하고 있어
동서식품 측 “무사귀환에 도움이 되어 다행”
달달한 맛, 고소한 향기의 커피 한 잔을 초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커피믹스’가 연일 화제다.

10월 26일 경북 봉화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갱도에서 작업 중 고립됐던 두 명의 광부가 사고 발생 열흘 째, 무려 221시간 만에 구조된 기적적인 소식이 발단이 됐다. 제1 수직갱도에서 작업 중 토사가 수직 아래로 쏟아지면서 지하 190m 갱도에 갇힌 두 광부는 작업 장소 인근에 있던 원형공간에 비닐로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고립 후 초기 사흘간 이들은 갖고 있던 커피믹스 30봉지를 물에 타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버틴 끝에 무사히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광부의 생환소식과 함께 화제가 된 것은 이들의 생명보존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커피믹스다. 그저 손쉽게 커피 한 잔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제품 정도로만 여겼던 커피믹스의 존재감이 ‘확’ 커져버린 것. 온라인에서도 “커피믹스 다시 봤다”, “오늘부터 가방에 커피믹스 10개씩 넣어다닌다”, “두 광부 분들을 커피믹스 광고모델로 강추”, “내 출근도장은 커피믹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커피믹스로 끼니를 때우던 장면이 생각난다” 등 커피믹스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등장했다.

그런데 커피믹스는 어떻게 두 광부의 생명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을까. 알고 보면 커피믹스는 은근 높은 열량과 필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광부들이 섭취한 커피믹스가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커피믹스 1위 업체인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를 기준으로 볼 때 1개당 열량 50kcal, 나트륨 5mg, 탄수화물 9g, 당류 6g, 지방 1.6g, 포화지방 1.6g이 들어있다.

음식 속의 열량(칼로리)을 이용해 우리는 몸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운동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성인이 하루 필요로 하는 열량은 약 2000kcal 이상으로 커피믹스 한 개는 1/40 수준이다. 커피믹스 4∼5개는 밥 한 공기(150g)의 열량과 맞먹는다.

동서식품 측은 “커피믹스가 재난 용도로 나온 식품은 아니지만 광부 분들이 무사히 귀환하는 데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빨리빨리’가 탄생시킨 커피믹스…초당 61.5개씩 팔려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해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커피믹스. 하지만 커피믹스의 원조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 제품을 선보인 기업이 동서식품이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1976년 12월 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배율로 배합해 방습포장에 담은 일회용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커피믹스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커피 몇 스푼, 설탕 몇 스푼, 크리머 몇 스푼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커피믹스는 이른바 ‘다방커피의 표준화’를 이룬 제품이기도 했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커피믹스가 세상에 나오는 데에 막대한 동기를 부여했다고 한다. 특히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의 일회용 커피믹스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식물성 커피 크리머인 ‘프리마’를 자체 개발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커피믹스는 2017년 통계청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이 뽑은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인스턴트 커피믹스의 간판격인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는 2019년 출시 30주년을 맞았고, ‘맥심 화이트골드’는 올해가 출시 10주년이다. 맥심 화이트골드의 누적 매출은 약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낱개 스틱 기준으로 약 194억 개가 팔렸으니, 초당 61.5개가 판매된 셈.

한국산 커피믹스의 인기는 해외에서도 뜨겁다.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등도 열렬한 커피믹스 수입국이다. 우리나라 남극 과학기지를 찾는 외국인 연구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제품도 커피믹스라고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도 커피믹스가 등장한다. 주인공 강인구(하정우 분)가 수리남에서 사업을 벌이기 위해 현지 군인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커피믹스였다.

미국 LPGA 선수들 중에도 커피믹스 마니아가 적지 않다. 이들이 한국선수들에게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대표적인 물품이 두 개가 있는데, 바로 비비크림과 커피믹스라고 한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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