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디로퍼’로 데뷔했던 그 가수, “이탈리아가 알아보고, 유럽이 반했다” 류지수 인터뷰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10]

입력 2023-03-16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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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가수의 꿈’ 대구 소녀 상경하다
-2년 만에 모던록 밴드 보컬로 데뷔 … 윤도현 러브레터 무대에
-이탈리아 거장들에게서 온 프러포즈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올해는 세상과 소통하는 ‘그랜드 단독 콘서트 열고 싶어요”
10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사적인 식사모임에서 한 지인이 모두에게 “정말 노래 잘 하는 가수”라며 한 여성분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는데, 여성분은 별다른 말없이 웃고만 있었습니다. 이 ‘노래 잘 하는 가수’의 이름은 ‘초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인상은 ‘마치 드래곤볼의 슈퍼사이어인 같은 이름이군’이라는 정도. ‘초인’이 풀 초(草)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예전의 일을 류지수 씨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 류지수씨는 몇 년 전부터 ‘초인’이라는 예명 대신 자신의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기자님, 시간 정말 빠르죠.”
“그러게요. 10년이라니. 근데 그대로시네요.”

10년 동안 ‘노래 잘 하는 가수’는 훌쩍 성장해 지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는’ 스타가 됐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연달아 차트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지요(미국 뉴욕 라디오 차트에선 무려 4주간 1위까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보사노바 그룹인 ‘마르끼오 보사’와 함께 한 작업 덕입니다. 이 그룹의 핵심 인물들인 피에로·피포 형제들과의 인연은 마치 드라마 같습니다.

최근에는 강산에 씨의 명곡 ‘라구요’의 리메이크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화제입니다. 다른 가수의 콘서트에 초대를 받아 객석에 앉아 있다가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 부른 ‘라구요’의 영상을 강산에 씨가 보고 “너무 잘 부른다. 내 곡을 드려야겠다”고 감탄한 것이 ‘류지수 버전 라구요’가 탄생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게 4년 전의 이야기.

이후 코로나 팬데믹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선보이게 되었다고 하지요.

“4년 전에 녹음한 거죠. 지금보다 목소리가 좀 더 맑잖아요(웃음).”

노래는 4년 전의 것. 다만 뮤직비디오는 지금 시점에서 살짝 ‘촌스러운 느낌’이 있어 새로 찍었다고 합니다.



●꿈을 좇아 대구에서 서울로…2년 만에 모던록 보컬로 데뷔

“데뷔는 언제 하신 거죠?”
“흐흐 그럼 또 나이가 나오는데요. 데뷔는 20대 초반에 했죠.”

류지수 씨는 대구가 고향입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것은 아니겠죠?”
“동네 오빠가 서울에서 방송, 연예 분야 관련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오빠가 대구 왔다가 노래방에서 제 노래를 듣더니 그냥 장난처럼 ‘너 가수 될 생각 없냐’고 했죠.”

가수에 대한 막연한 꿈만 갖고 있던 류지수 소녀에게 오빠의 말은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많이 망설였죠.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서 정착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돈벌이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그래서 처음엔 거절했어요.”

한번 접은 기회는 류지수 소녀의 마음을 다시 찾아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한일월드컵. 전국이, 전 국민이 하나가 되고, 들뜨던 시기. ‘동네 오빠’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야! 너 올라와서 네 꿈을 한번 펼쳐볼래?”
류지수 씨는 “진짜 앞뒤 안 가리고 오케이 한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말릴 줄 알았던 어머니는 ‘쿨하게’ 허락하셨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가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지수, 쟤는 나가야 잘 될 아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 성격도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게 쿨한 편이셨고(웃음).”

사실 류지수 씨가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류의 제목이 붙은 카세트테이프를 잔뜩 사 오셨다는 거죠. 어린 류지수는 이 테이프를 영어 리스닝 공부하듯 리와인드 해가며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보디가드’의 OST는 아예 교과서였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어떻게 되었나요.”
“사실 학교 다닐 때 제 전공은 패션 디자인이었어요.”
“네?”


가수가 되려면 오디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오디션 준비를 하려면 노래 레슨 같은 것도 받고 그래야 하지 않나요.”
“사실 제가 학원이나 이런 경로를 통해서 노래를 배운 적이 없거든요. 혼자 독학해야 했어요.”

타지 생활을 하기 위해선 생활비도 벌어야 했습니다. 압구정동에 있는 수입 의류점에서 샵 마스터로 일하며 돈을 벌었고, 남는 시간에는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옛날 컴퓨터. 왜 그, 모니터도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거 있잖아요. 그 컴퓨터로 인터넷 연결해서 가수들 영상들을 찾아가지고, 그걸 보며 연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날로그틱하게 연습했죠(웃음).”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살던 집이 반지하였는데, 먼지가 무척 많았던 거지요. 발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먼지를 먹으며 노래연습을 하다보니 목에 무리가 간 것이었습니다.

“오디션 전날에 목이 그만 가 버린 거예요.”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열도 났습니다. 압구정동 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자니 ‘현타’가 오더랍니다. 그날 류지수 씨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 처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혼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떨어지고, 좌절하고, 다시 힘을 내고 ….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모던록 그룹에서 여성 보컬리스트를 구하니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거였지요.

“노래도 그렇게 잘 부른 것 같지 않은데 첫날에 딱 오케이 하시더라고요.”

그룹의 이름은 미스터 소울. 남녀 혼성 보컬리스트로 구성된 모던록 밴드였습니다. 원래는 남성 보컬리스트가 이끌던 하드록 그룹이었는데 “여성 보컬을 붙여서 조금 소프트한 록을 해보자”고 한 거였다지요.

“합류하고 보니 원래 여성 보컬리스트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앨범까지 다 만든 상황이었는데 그만 어떤 이유에선지 여성 멤버가 나가버린 거죠.”

그래서 여성 보컬리스트를 ‘급구’한 것인데 여기에 류지수 씨가 딱 눈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앨범이 나오고, 전국 투어가 시작되었지요.

“미스터 소울 앨범을 지금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그게 잠겨 있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영상시대잖아요. 제 영상이 올라와 있더라고요(웃음). 진짜 저의 ‘흑역사’ 같은 모습인데.”

여성 록커가 많지 않던 시절. 붕붕 띄운 사자머리를 한(한국의 신디로퍼가 콘셉트였다고 합니다) 젊은 여성이 록 음악을 한다니, 다들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남자 보컬 분이 원래 록 음악을 하던 분이었잖아요. 그 분이 선배님들이라고 저를 여기 저기 소개 시켜줬는데 백두산, 블랙홀 같은 분들이셨죠.”

그 시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당시 최고의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이었죠.

“제가 진짜 좋아하던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상상해 보세요. 지방에서 과자 먹으면서 TV를 보던 제가 2년 만에 그 무대에 서 있는 거예요. 이게 믿겨지세요? 정말, 제가 가진 걸 처음으로 무대에서 다 쏟아냈죠.”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 무대는 공연장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편이었죠.
그런데 시청자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가수들이 대기하는 공간이 무대 뒤쪽에 있었는데, 그곳도 관객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공간에서부터 주변에 관객들이 앉아 있는 구조였어요. 누군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진짜 긴장이 많이 되는 무대’라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죠. 무대 뒤쪽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떨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 작은, 작지만 심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힘내세요. 잘 하세요. 파이팅!”

“그 말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요.”
“정말 뻔한 얘기인데, 그런 말이 힘이 되는군요.”
“네. 그랬어요. 누군가로부터,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까.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해주니까. 그 말을 들으니 긴장이 슥 내려가면서 그제서야 ‘즐기자’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날 ‘한국의 신디로퍼’ 류지수 씨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무대에서 에릭 클랩튼의 ‘체인지 더 월드’를 불렀는데, 반응은 대박. 이후 많은 음악방송에 출연했고, 노래는 컬러링으로 나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르끼오 보사와의 인연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떨까”

미스터 소울 이후에는 디엔디 프로젝트 그룹에서 보컬을 맡기도 했고, 솔로로 음원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모던록으로 데뷔를 했지만, 사실 류지수 씨의 ‘본업’은 알앤비입니다.
‘류지수’라는 본명으로 본격 솔로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8년. 직접 작곡, 작사한 싱글 ‘여보세요’와 ‘하얀 밤’을 발표하며 ‘시즌2’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게 됩니다.

“이제 이탈리아 거장들과의 협업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
“진짜 드라마 같은 얘기죠.”

마르끼오 보사는 피에로 롬바르도, 피포 롬바르도 형제가 중심이 된, 이탈리아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그룹입니다. 팬텀싱어 시즌3의 준우승팀인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가 이들의 보사노바 곡 ‘루치’를 편곡해 부르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곡이 먼 나라 한국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 형제에게는 꽤 흥미로웠던 모양입니다. 유튜브, SNS에서 한국 가수들의 영상을 서치하다가 ….

“감사하게도 그 레이더에 제가 걸린 거죠.”
“도대체 그들이 무슨 영상을 봤길래요?”
“여러 영상을 봤던 모양이에요. 그 중에서 제가 친구를 위해 부른 영상이 있는데, 그 분들 말로는 ‘스윗한 보이스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더라고요.”

2021년 6월. 이들에게 역사적인 날이 찾아옵니다.
류지수 씨는 이탈리아로부터 SNS DM을 통해 음악 링크를 받았고, 이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보내온 이들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명한 보사노바 뮤지션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음악과 제 음악을 서로 교류하며 간간히 대화를 이어갔어요.”

어느 날 피에로가 자신이 직접 부른 곡을 보내왔습니다.
“이건 아직 완벽하지 않은 가이드 곡인데, 이 노래를 지수의 보이스로 불러줄 수 있을까요?”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날 것의 느낌으로 작업하는 건 그들의 독특한 방식이기도 해요. 아날로그한 방식을 좋아하는 저에게도 더 정감있게 다가왔고요.”

류지수 씨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가사 보내주세요. 제가 보컬 어렌지를 해볼게요.”

류지수 씨는 자신의 보컬에 코러스 라인까지 만들어 녹음해서 이탈리아로 보냈습니다. 두 형제의 반응은 “You are so great!!”.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류지수 씨와 마르끼오 보사의 첫 컬래버레이션 곡인 ‘섬웨어(Somewhere)’였습니다. 이후 이들의 협업은 또 하나의 싱글 ‘시크릿 러브 어페어(Secret Love Affair)’를 거쳐 2월 정규앨범 ‘I Asked for you’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정규앨범까지 만든 이들이 단 한 번도 ‘실물대면’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협업은 페이스북 DM과 인스타그램, 메일, 요즘은 해외에서 많이 사용하는 ‘왓츠앱’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순전히 ‘영어 텍스트’로만 소통하다보니 불편한 점도 많았겠지요. 양쪽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지라 답답할 때도 많았답니다. 류지수 씨는 “이제 좀 편해졌어요. 지금은 무슨 말 하는지 그냥 알아듣게 됐죠”라고 했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석기시대의 펜팔 같은 것 아닙니까” 했더니 류지수 씨가 “정말 그런 느낌”이라며 웃었습니다.

보사노바는 원래 브라질의 음악입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작곡한 보사노바 음악은 세계 재즈계의 한때를 풍미했었죠.
이탈리아의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것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류지수 씨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사노바는 뭐랄까. 서정적이면서, 해안가에 앉아 있으면 물결이 넘실넘실 하는 …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렇죠. 나른한 기분도 들고.”
“네. 그러면서 세련된 분위기가 있죠. 그런데 이탈리아 보사노바는 물결이 넘실대는 와중에 파도가 철썩하고 한번씩 쳐주는 … 좀 세련되면서 자극적이고, 다소 실험적인 부분이 있어요. 게다가 이번에 (정규앨범에는) 팝적인 요소도 들어 있기 때문에 신선했어요.”

류지수 씨도 살짝 이야기를 했지만 이들과의 만남과 협업 과정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 DM으로 맺은 소박한 인연으로 시작해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고, 가끔은 투닥투닥 다투기도 해가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드디어 한국과 이탈리아의 뮤지션이 상봉하여 함께 이탈리안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까지. 상당히 재미있는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 볼까요.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올해는 세상과 좀 소통을 해야 할까 봐요. 단독 콘서트 하려고요.”
“단독 콘서트라니, 멋진데요!”“첫 콘서트는 정말 소규모로 했는데 그것도 5, 6년 전이었죠. 이번엔 좀 특별하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랜드 단독 콘서트처럼. 그리고 무대에서 놀아봐야죠.”

인터뷰를 마친 류지수 씨가 홀가분한 얼굴로 밑바닥에 남은 음료수를 마셨습니다. ‘달그락’ 얼음소리.
스마트폰 녹음시간이 어느새 1시간 33분 50초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거리가 온통 봄 햇살이로군요. 이제, 제가 바빠질 시간입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버드류아크 엔터테인먼트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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