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이미지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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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호감이 가는 종교가 있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종교도 있다. 그러나 헌법이 보호하는 자유는 다수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니다. 오히려 비호감과 오해, 편견의 한가운데 있는 집단일수록 기본권 보장의 진정성은 시험대에 오른다. 종교의 자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한 사회의 수준을 드러낸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정교분리는 헌정 질서의 기본이다. 이는 국가가 특정 종교를 보호하거나, 반대로 낙인찍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국제적으로도 ICCPR 제18조와 유럽인권협약 제9조는 종교의 자유를 핵심적 인권으로 규정한다.

물론 종교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공공안전, 질서, 타인의 권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한은 어디까지나 법률에 근거하고 필요성과 비례성을 충족해야 하며 무엇보다 신앙이 아니라 행위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종교가 비주류라는 이유, 사회적 비판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집단 전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낙인의 정치가 된다.

이 원칙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병역거부 문제는 한때 일률적 처벌의 대상이었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양심에 따른 선택의 여지를 인정했고 결국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이어졌다. 다수의 불편함 속에서도 국가가 개인의 신념을 제도 안에서 보장하려 한 결정이었다.

신천지를 둘러싼 논란 역시 같은 기준에서 바라봐야 한다. 비판도 가능하고 수사는 필요하다. 불법이 있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선은 분명하다. 실제로 코로나19 당시 대법원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횡령 등 다른 혐의는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방식이다. 법원은 종교가 아니라 행위와 증거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도 바로 이 원칙이다.

종교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양심의 영역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 바꿀지의 선택은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다. 동시에 종교의 자유는 다원사회를 지탱하는 안전장치다. 오늘 특정 종교를 향한 억압은, 내일 다른 신념과 사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감시와 비판은 필요하지만, 낙인과 일반화는 경계해야 한다. 특정 집단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전체를 위험한 집단처럼 묘사하는 보도는 공익이 아니라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언론이 기본권의 언어를 잃는 순간, 가장 먼저 침묵하는 것은 소수자다.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종교의 자유는 ‘좋은 종교’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종교, 낯설고 불편한 종교까지 포함해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다. 처벌해야 할 것은 신앙이 아니라 ‘불법행위’이며 제한해야 할 것은 교리가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민주사회는 인기 없는 권리를 어디까지 지켜내는가로 평가된다. 종교의 자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종교가 아니라, 어떤 종교에도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할 헌법의 원칙이다.

부산 | 김태현 스포츠동아 기자 localbuk@donga.com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