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종군·상이제대’ 등 생생한 흔적 확인
여성 학도병 기록까지 발굴…잊힌 전쟁사 복원 본격화
여성 학도병 기록까지 발굴…잊힌 전쟁사 복원 본격화

경상북도교육청 전경. 사진제공 ㅣ 경북교육청
경북교육청은 6월 10일 6·25전쟁 당시 학업을 중단하고 전장으로 향했던 학도병들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추진 중인 중·고등학교 학적부 전수조사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쟁 속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했지만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학도병들의 존재를 공식 기록으로 확인하고, 잊힌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추진됐다. 특히 75년 동안 학교 학적부 속에 잠들어 있던 무명의 학도병 흔적을 발굴해 공식 역사 기록으로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경북교육청은 지난 2022년부터 추진해 온 학적부 전산화 사업 과정에서 1950년 전후 제적생이 다수 확인되고 일부 제적부에서 ‘학병’이라는 기록이 발견된 점에 주목했다. 이후 실제 참전 사실이 기재된 사례들이 확인되면서 개인의 증언과 기억에 의존해 왔던 학도병 역사를 객관적인 공적 기록을 통해 재조명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는 올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상은 1951년 이전 개교한 중학교와 1953년 이전 개교한 고등학교 등 모두 121개 학교다. 현재까지 경북지역 32개 고등학교의 학적부 1만5132건에 대한 조사가 우선 완료됐으며, 그 결과 학도병 참전으로 추정되는 기록 615건이 확인됐다. 이는 전쟁 당시 학생들의 참전 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조사에는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이 참여해 수십 년간 보관돼 온 학적부를 한 장 한 장 확인하며 전쟁 속 학생들의 삶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징집으로 입대’, ‘응소’, ‘학병’, ‘학도병’, ‘학도의용대원’, ‘종군’, ‘상이제대’, ‘명예제대’, ‘종군 중 복교 졸업’ 등 학도병들의 입대와 복귀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들이 발견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단순히 전투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넘어 학생들이 전쟁 현장에서 수행했던 다양한 역할까지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 학생의 학적부에는 ‘미군 제7사단 31연대 소속 콜롬비아 통변’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통변은 오늘날의 통역 또는 의사소통 지원 역할에 해당한다. 이는 당시 학생들이 외국군과의 연락 업무와 문서 전달, 현장 의사소통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지역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전투 참여뿐 아니라 군 관련 문서 작성, 편지 대필, 연락 업무, 통역 보조 등 자신의 지식과 역량을 활용해 전쟁을 지원했다. 학적부에 남겨진 짧은 기록들은 이들이 단순한 소년병이 아니라 배움을 나라를 위해 사용했던 학생들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기록도 확인됐다. 포항고등학교 한 학생의 학적부에는 ‘출정 시 복부관통’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어 어린 학생들이 전쟁터에서 겪어야 했던 비극과 희생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학도병들의 존재도 새롭게 드러났다. 김천여자중학교 학생들의 학적부에는 ‘현역군인으로 복무’, ‘군에 입대’ 등의 기록이 확인됐으며, 상주여자중학교 한 학생의 학적부에서는 ‘종군’이라는 문구가 발견됐다. 이는 6·25전쟁 당시 여성 학생들 역시 다양한 형태로 전쟁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현재 중학교 학적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을 찾아내기 위한 기록 복원 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향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도병들의 삶과 활동을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화할 계획이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학적부에 적힌 짧은 단어들은 75년 전 멈춰버린 소년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라며 “남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줌으로써 잊혀졌던 소년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교육청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도병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구술 자료와 사진, 생활기록 등 다양한 사료를 연계해 경북지역 학도병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지역 교육사와 전쟁사 연구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동 ㅣ나영조 스포츠동아 기자 localdk@donga.com
나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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