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산 전 경기대 사회교육원 교수
정운산 전 경기대 사회교육원 교수

정운산 전 경기대 사회교육원 교수


올해로 3년째를 맞은 경기도 과천시와 신천지의 행정소송은 단순한 시설 용도변경 분쟁이 아니다. 곧 2심 판단을 앞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가 비호감 집단을 어디까지 제도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해당 공간은 본래 문화·집회시설로서 예배가 가능했던 상업건물이다. 건축법상 종교시설과 문화·집회시설은 동일 시설군에 포함되므로 신천지가 신청한 기재변경은 행정적으로 당연히 수리되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과천시는 신청을 반려했고 1심 재판부는 막연한 주민 민원과 추상적 우려만으로는 수리 거부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현재 이 사건은 과천시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치권은 이 사안을 선거 이슈로 끌어들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설 진입 차단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민 일부의 신천지에 대한 거부감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법과 원칙보다 표 계산이 앞선 결과다.

차별은 스스로 차별이라 하지 않는다. 이들은 종교적 비난 대신 교통 혼잡과 건물의 구조적 안전, 시민 불안 같은 논리를 내세운다. 정치적 속셈과 종교 차별이란 비난을 비껴가기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행정기관의 수리 거부는 명백한 월권이다.

동일 시설군 내의 용도변경은 법이 정한 요건만 갖추면 지자체가 무조건 수리해야 하는 ‘정해진 절차’이기 때문이다. 구청에 서류를 내면 발급해 주는 여권처럼, 지자체장에게 임의로 허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만약 그 공간에 들어서는 주체가 대형 주류 교회였다면 과연 이토록 집요한 반대와 행정 제재가 가능했을까.

행정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려면 눈에 보이는 중대한 위험을 증명해야 한다. 주민의 정서적 불안이나 막연한 예측은 법적 거부 사유가 될 수 없다. 이를 무시하고 적법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한 사유재산 공간마저 타인의 호불호에 따라 제한한다면 이는 민원 수렴을 넘어선 초법적 권리 박탈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적 권리는 호감도로 배분되지 않는다. 설사 시민 일부로부터 반감을 사는 대상에게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법의 보편성이 유지된다. 비호감을 이유로 법의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그 칼날은 언제든 다른 소수자나 비주류 집단으로 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칼날은 결국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 집행자도, 심판자도, 표를 계산하는 정치권도 법의 보편성이란 원칙 앞에서 흔들려선 안 된다.

혐오를 안전이라는 합리성의 언어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오늘 한 집단의 공간을 막아선 논리는 내일 더 약한 누군가의 권리를 짓밟는 무기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공익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배제를 허용할 것인가. 그 기준은 정말 모두에게 평등한가.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