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나 사발렌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왼쪽), 유튜브 캡처(오른쪽).
4번 시드를 받아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권순우(112위)는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센터에서 열린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카시디트 삼레즈(636위·태국)에 1대 2(3-6 7-5 4-6)로 져 탈락했다.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를 밟은 실력자인 권순우의 패배는 예상치 못한 큰 충격이었다.
패배가 확정된 후 권순우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듯 들고 있던 라켓을 코트 바닥에 수차례 내리쳤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경기 중 휴식을 취하는 의자에 라켓을 거칠게 휘둘렀다. 상대 선수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지만 이를 외면했다. 관중석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고, 현장 상황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으로 퍼져 비난이 쇄도했다.
권순우. 소셜미디어 영상 캡처.
유력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권순우의 태도를 지적하는 기사를 낼 정도로 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테니스에서 선수가 라켓을 부수는 일은 흔하다.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노바크 조코비치는 경기가 안 풀릴 때면 라켓을 박살내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걸로 유명하고, 매너가 좋은 걸로 알려진 로저 페더로도 젊었을 땐 그 같은 행동을 종종 했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있다. 권순우 처럼 경기가 끝난 후 라켓을 부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특히 경기를 마친 후 악수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매너로 통한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이를 지지한 벨라루스 선수들과 악수를 거절 한 게 논란이 됐을 정도다.
이번 일로 인해 WTA(세계여자테니스협회) 단식 랭킹 2위 아리나 사발렌카의 ‘품위 있는’ 라켓 부수기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사발렌카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US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미국의 10대 코코 고프(당시 6위)에 1-2로 패한 후 시상식 연설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으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준우승 트로피를 들고 홀로 로커룸에 들어선 사발렌카는 그제서야 감정을 표출했다. 가방에서 라켓 하나를 꺼내더니 바닥에 내리쳐 망가뜨리는 것으로 마음속의 분노를 토해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자 사발렌카의 좌절감에 많은 동료 선수와 팬들이 공감을 표했다.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적인 영상을 유출한 것은 잔인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권순우의 이번 행동에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높은 것은 일반 투어대회가 아닌 국가를 대표해 출전한 아시안게임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권순우를 향한 비판에는 그가 이번 일을 계기로 스포츠맨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더욱 성숙해지기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동아닷컴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