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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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현재 대한민국의 소버린 AI 전략이 하드웨어와 기술 중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한국의 ‘역사·문화·정체성 데이터 확보’를 국가 핵심 아젠다로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의 캠페인에 착수했다. 

소버린 AI란 사회 전반에 대한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가 AI를 활용함에 있어 해외 기술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데이터·인프라·기술·인력을 통해 인공지능 모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을 말한다. 즉 ChatGPT, Gemini와 같은 해외 기술력과 서비스에 의존하는 현 상황을 벗어나 대한민국 고유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개발·상용화하려는 시도다.

이는 공공데이터를 포함한 국내 민감 데이터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는 동시에 영어권 중심의 AI 모델에서 벗어나 자국만의 언어, 문화, 정체성을 반영한 ‘맞춤형 AI 모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는 9월 국가 최상위 AI 전략 논의 기구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에 대해 반크는 대한민국 소버린 AI의 필요성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출범이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위원회의 심의 기능이 기술적·산업적 요소에 집중된 나머지 소버린 AI의 핵심 기반이 되는 ‘문화·역사·정체성 데이터’에 대한 소프트웨어 전략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국가 차원의 소버린 AI 아젠다는 대부분이 반도체, 데이터 센터, 규제 혁신, 민간 투자 등 산업적·기술적 기반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소버린 AI라는 국가적 비전이 ‘기술 주권’에 머무른 채 ‘문화·역사 주권’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반크는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대한민국이 자체 AI 인프라와 모델을 갖추더라도 그 안을 채우는 지식과 서사가 여전히 서구 중심의 데이터와 관점에 의존하는 ‘무늬만 소버린 AI’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 100일을 맞아 발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AI 액션플랜)’에서도 확인된다. 위원회는 이번 계획안을 통해 2030년까지 피지컬 AI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GPU 등 AI 인프라 확충 ▲피지컬 AI 핵심 기술·데이터 확보 ▲산업 전반의 AI 전환(AX) 가속화 ▲공공 시스템의 민간 클라우드 전환 ▲글로벌 AI 의제 선도 등 총 98개 과제를 제시했다.

해당 계획안은 인프라·인재·산업 경쟁력 강화를 핵심 방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반크는 이 같은 종합 계획에도 불구하고, AI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학습하고 어떤 국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화·역사·정체성 데이터 전략’은 여전히 주요 아젠다에서 빠져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반크는 공공 시스템의 AI 전환과 공공 데이터 개방이 확대되는 현시점에서, 역사·문화·정체성 데이터에 대한 국가 차원의 기준과 보호 전략 없이 AI 활용이 가속화될 경우, 오히려 왜곡된 정보가 공공 영역에서 공식화될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는 소버린 AI가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어떤 서사와 관점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히 AI가 기존 검색 포털의 역할을 대체해 가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인공지능은 오히려 ‘디지털 공간에서의 역사 왜곡과 문화 오인’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실제로 반크가 ChatGPT, Gemini, Grok 등 해외 주요 LLM 인공지능 모델을 대상으로 국내 문화유산, 지자체 행정 정보, 지리 정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정보 누락을 넘어 공공 행정과 지역 정체성 전반에서 구조적인 오류 양상이 확인됐다.

경기도의 경우 기후행동 기후소득, 버스 환승 제도, 청년정책 등에 대한 설명이 사실과 다르게 서술되거나, 도내 주요 문화유산의 이미지가 변형되고 역사적 맥락이 축소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특히 APEC을 계기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됐던 역사 도시 경주의 경우, 일부 AI는 APEC 개최지를 서울로 잘못 안내했으며, 경주를 상징하는 첨성대·석굴암·얼굴무늬 수막새 등 문화유산 이미지 역시 원형과 다른 형태로 생성됐다. 이는 국제 행사와 연결된 지역 이미지가 AI를 통해 왜곡·고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외국인 유입률이 높은 충청북도에서도 지역 대표 무형문화유산인 택견을 태권도 또는 중국 무술(쿵푸)과 혼동하거나, 관광지 이용 조건·비용 정보를 부정확하게 안내하는 등 역사·문화·관광 전반에 걸친 AI 서술 오류가 확인됐다.

반크는 이러한 현상이 누적될 경우, 향후 AI가 생산하는 정보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기준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외국 이용자들은 한국에 대한 정보를 AI의 답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AI가 생성하는 서술이 곧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주권을 담아 출범하는 ‘대한민국 소버린 AI’에서조차 한국의 역사·문화·정체성 데이터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역사 왜곡과 문화 오인이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이는 해외 AI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추진되는 소버린 AI가 오히려 국가 차원의 왜곡을 제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가 정체성과 공공 신뢰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글로벌 소버린 AI 캠페인을 통해 기술 주권을 넘어 문화·역사 주권을 함께 확보하는 대한민국형 주권 AI 모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히 국내 기술력으로 AI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역사·문화·유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AI 학습의 핵심 근거 데이터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크는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향후 소버린 AI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 문화·역사·유산 데이터의 국가 차원 표준화 ▲소버린 AI 품질 평가 체계 내 문화·역사적 정합성 지표 도입 ▲글로벌 AI 환경에서 문화·역사 왜곡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국제 협력 확대 등을 주요 아젠다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주권 AI가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데이터 불균형의 영향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역사와 정체성 왜곡이 잦은 아프리카, 아세안, 남미 국가들과 연대하는 ‘글로벌 문화·역사 주권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축적한 소버린 AI 구축 경험과 문화 데이터 보호 전략을 공유함으로써, AI 시대의 새로운 ‘공공외교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반크가 아프리카에 대한 AI 서술을 조사한 결과, AI의 답변은 훈련 데이터와 글로벌 정보 환경에 내재된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주요 AI 모델 다수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사바나 초원, 야생동물, 사하라 사막, 원시 부족 등을 제시했으며,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빈곤 지역의 풍경으로 단순화해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54개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문화·인종·기후적 다양성이 삭제된 채, 하나의 단일한 공간으로 서술되는 양상이 공통으로 확인됐다. 반크는 이러한 AI 서술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축소·고착화시키고, 디지털 환경에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 식민주의를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반크 박기태 단장은 “어떤 역사와 어떤 문화가 AI의 언어로 기록되고, 전 세계에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곧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추진하는 소버린 AI는 기술 자립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지켜낼 수 있는 ‘정체성 있는 AI’로 완성돼야 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AI 주권”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단장은 “한국은 식민 지배를 겪으며 역사와 문화가 왜곡·말살된 아픔을 경험했고, 이를 극복해 낸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이 경험은 오늘날 AI 신제국주의 속에서 정체성을 위협받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이자 사명”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한민국의 소버린 AI가 기술 경쟁을 넘어,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이는 국가 브랜드와 국제적 위상을 동시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캠페인을 기획한 백시은 청년연구원은 “청년 세대에게 AI는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정보 창구가 되고 있다”며 “다만 가장 큰 문제는 AI 서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데이터가 AI에 학습되고, 어떤 관점이 AI의 답변을 구성하는지 점검하는 것은 곧 국가의 문화·역사 주권을 지키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특히 백 연구원은 “소버린 AI에 역사·문화 데이터가 포함돼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문화 보호’ 차원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시민과 청년들이 자신의 나라를 왜곡 없이 이해할 권리와도 연결된다”며 “청년 세대가 AI를 통해 접하는 한국사가 외국 정부나 글로벌 기업의 관점이 아닌, 우리가 검증하고 합의한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문화 데이터는 소버린 AI의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반크는 이번 글로벌 소버린 AI 캠페인을 계기로 국민과 청년 세대가 AI 속 문화·역사 왜곡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국제적 대응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에 반크가 조사한 AI 한국 관련 오류와 정책 제안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