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융의일본,일본야구]영원한‘순혈요미우리’상징

입력 2008-03-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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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다쓰노리는 1981년 입단 시점부터 ‘골든 루키’였다. 당시 ‘와카이 다이쇼(‘젊음의 대행진’ 같은 쇼 프로)’란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 키야마 유지와 닮은 외모와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하라가 입단한 1981년 요미우리는 세대교체의 시점이었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현 요미우리 종신 명예감독)이 퇴진하고, 후지타가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후지타는 베테랑 대신 하라나 니시모토, 가토리 같은 81년 입단 동기를 적극 기용했고, 취임 첫 해 우승을 성취했다. 입단과 동시에 후지타 감독으로부터 요미우리 팀 리더의 임무를 부여받은 하라는 22홈런을 터뜨렸다. 데뷔 첫 해 활약으로 하라를 비롯한 요미우리 81년 입단생들은 100% 이상의 연봉 인상률을 기록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었다. 그는 타자, 나는 투수로 포지션이 달라서 각별한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지만 서글서글한 성격의 후배로 기억한다. 하라의 포지션은 원조 골든루키 나가시마와 같은 3루였다. 이후 현 야쿠르트 감독인 다카다 시게루, 나카하타에 이어 하라가 데뷔 시즌부터 3루 포지션을 계승했다. 하라의 입단으로 나카하타가 1루로 이동했으니 기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라는 90년대 부상과 노쇠화로 95년 은퇴했다. 나가시마 감독 시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2001년 나가시마가 감독직을 사퇴한 직후 하라가 물려받았다. 이후 하라는 2002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고도 2003시즌 후 경질됐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주와 불화설이 돌기도 했지만 확대해석이라 생각한다. 매 시즌 우승이 아니면 안 되는 요미우리이기에 성적 부진이 해임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요미우리는 성적과 인기와 선수 육성에 있어서 언제나 최고가 아니면 안 되는 구단이다. 하라는 역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호리우치(2004∼2005년)에 이어 2006년 요미우리 감독으로 복귀했다. 비록 2007시즌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뒀지만 2008년도 우승하지 못하면 거취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멤버로 우승하지 못하면 책임론이 따라올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호시노 센이치 일본 대표팀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지 여부다. 현재 요미우리는 하라 외엔 감독감이 없다. 그러나 요미우리 OB가 순혈주의 노선을 바꾼다면 호시노 감독도 가능성이 있다. 현역 시절 하라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금의 이승엽과 닮았다.리더십에 있어선 선수들에게 포기란 말을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가끔 원 포인트 레슨을 즐기는) 오치아이 주니치 감독과 달리 코치나 선수에게 믿고 맡기는 리더십을 구사한다. 덕분에 선수들의 인망을 얻고 있다. 이승엽을 너무 신뢰해서 한국계란 소문도 돌았다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하라 다쓰노리 1958년 7월 22일생. 1981년 신인왕, 1983년 타점왕과 MVP 수상. 1995년까지 요미우리 한 팀에서만 뛰고 은퇴. 통산 382홈런 1093타점 1675안타. 요미우리 감독으로서 2002년 일본시리즈 우승. 2007년 센트럴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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