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더비’ 최후마저빈약했다

입력 2008-04-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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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이사회선수보강외면…EPL승격후고작1승‘역대최단기강등’불명예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창설된 이후 15년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최고 리그에서 살아남은 클럽은 단 7개에 불과하다. 아스널, 애스턴 빌라, 첼시, 에버턴,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토트넘 홋스퍼 등이다. 더욱이 EP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클럽은 맨유, 블랙번 로버즈, 아스널, 첼시 정도여서 정상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상위권은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컵 출전권 획득을 위해, 하위권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 시즌 마지막까지 한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승부를 펼쳐야 하는 곳이 EPL이다. 그런데 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붉은 눈시울로 맨유와 첼시의 우승 경쟁을 지켜봐야하는 팬이 있다. 바로 챔피언십으로 강등이 확정된 더비 카운티의 서포터들이다. 이번 시즌 더비의 성적은 더비 매니저 폴 쥬얼의 말 그대로 최악이다. 시즌 막바지에 이른 현재까지 더비가 거둔 승리는 단 1승이다. 한단계 앞선 19위 풀럼이 거둔 승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1점으로 최하위다. 벌써부터 매스컴은 역대 최악의 강등 클럽인 선덜랜드가 갖고 있던 승점 15 이상을 더비가 거둘 수 있을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대 최악의 성적 여부를 떠나 더비는 역대 가장 먼저 강등이 확정된 클럽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더비는 3월에 강등이 확정된 유일한 클럽인 것이다. 사실 더비의 이 참담한 결과는 시즌 초 어느 정도 예견됐다. 역대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격된 15개 클럽 중 EPL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다시 강등된 클럽이 9개에 이른다. 이제 이 기록은 더비로 인해 16개 중 10개로 늘어났다. 이처럼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격된 팀이 EPL에서 힘든 첫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더비는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챔피언십에서 20위로 2005∼2006시즌을 마친 하위권 팀을 갖고 새로 부임한 빌리 데이비스 감독은 리그 3위와 5년만에 EPL 입성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이는 전 토트넘 홋스퍼의 이사이자 현 챔피언스리그 ITV해설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플리트가 지적한 대로 거의 살아남은 선수가 없을 정도로 대대적인 선수 보강을 통해 가능했다. 챔피언십과는 차원이 다른 EPL에서 살아남기 위해 역시 그에 준하는 보강이 필요했음을 빌리 데이비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비 구단 이사회는 채무관리에 급급한 나머지 데이비스의 투자요청을 외면했고, 결국 이런 갈등은 감독의 해임으로 이어졌다. 이런 비슷한 이유로 몰락한 대표적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 (리즈)다. 리즈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EPL 톱5 안에 들던 강팀 중의 강팀이었다. 그러나 구단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 리오 퍼디난드를 위시한 돈이 될만한 거의 모든 선수를 이적시킴으로써 강등을 거듭해 현재는 디비전 1에서 중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런 우울한 소식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현재 EPL 빅4에게도 강등권 추락은 예외일 수 없다. 가깝게는 첼시가 1987∼88 시즌에 디비전 2로 강등된 적이 있고, 맨유도 1973∼74 시즌에 강등이라는 쓴 잔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특히 1973∼7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맨유는 스토크 시티에 0-1로 패배함으로써 시즌 총 42경기 중 단 10승만을 거두고 강등됐는데, 이는 전후 맨유가 거둔 최저 승으로 기록되고 있다. 맨유가 리그 22개 클럽 중 21위로 강등이라는 수모를 맛본 이 시즌에 아스널이 10위, 첼시는 17위인데 반해 더비는 리그 3위였다. 이 때만 해도 더비가 맨유나 첼시 보다 강팀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리그 챔피언이 리즈였다는 점이다. 이렇듯 승부의 세계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EPL을 신설한 창설멤버 22개 클럽들 중 이번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인 클럽은 10개에 불과하고, 12개 클럽은 하위 리그로 강등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맨유 팬들이 선정한 맨유의 100대 위대한 선수 중 에릭 칸토나, 조지 베스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한 현 선덜랜드 매니저 로이 킨은 자신의 축구역정을 다음의 구절로 묘사하고 있다. “준비에 실패하는 자 실패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EPL은 오직 끊임없이 준비하는 자에게만 계속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영예를 주고 있다. 요크(영국)=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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