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훈의감독읽기]입지좁아진귀네슈

입력 2008-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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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room for me.” 최초의 외국인 고위 공직자인 윌리엄 라이백 금융감독원 특별고문이 임용 6개월 만에 중도하차하며 내뱉은 말이다. “여기엔 내가 있을 곳이 없다”는 그의 직설적인 표현은 그가 한국에서 느낀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인을 고위직 공무원에 적극적으로 채용하겠다던 정부의 방침이 무색하게도 6개월 만에 고위급 외국인 공무원이 짐을 싸는 것이 현실이다. 축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FC 서울이 수원 삼성에 2연패 당했다. 귀네슈 감독에게 올시즌은 가시밭길과 같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축구협회의 대표선수 차출 공문이 그의 신경다발을 짓누르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레알 마드리드의 베른 슈스터 감독이든 바르셀로나의 레이카르트 감독이든 지역의 최대 라이벌에게 2연패를 당하고 나면 잠을 못 이루는 것이 축구계의 상례이다. 차범근 감독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한국 축구의 영웅. 그에게 도전한 귀네슈 감독 또한 녹록치 않다. 월드컵 3위 감독의 이름값은 차 감독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올 시즌 붙은 두 번의 서울-수원 더비의 승자는 모두 차 감독이었다. 열혈 구단주가 있다면 아마도 귀네슈 감독은 단번에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을 듯 하다. 축구에서 외국인 감독이 성공하기란 무척 힘들다. 특히 유럽과 같이 어느 정도의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에 두고 있는 지역이라면 외국인 감독의 선임이야 국내 감독 뽑는 것과 매한가지의 기준을 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유럽인, 혹은 한국인과 남미인의 조합이 된다면 이야기는 180도 변하게 마련이다. 외국인 감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K리그에서는. 필자가 모셨던 니폼니시 감독은 2007년 러시아 언론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히딩크는 훌륭한 팀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히딩크가 한국팀을 맡은 첫 해에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언론과 전문가들, 심지어 국민들 조차 그를 싫어하고 조롱했다. 그를 믿어준 것은 단 하나, 그를 고용한 축구협회 뿐이었다.” 히딩크가 처음부터 영웅이었고, 마지막에도 영웅이었다는 식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만 한때는 ‘오대영’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외국인 감독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몸소 반복되는 실패와 아픔 속에서 현지화의 과정을 겪을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니폼니시 감독은 평소 한국 선수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의 기강과 감독의 지시에 대한 순종은 다른 어떤 나라의 선수들보다 훌륭하지만, 팀워크를 다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인 선수를 이끄는 외국인 감독에게는 창의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평소 니폼니시의 작전지시가 너무나 세밀하다고 느꼈던 필자에게 그의 말은 또 다른 깨달음의 기회를 주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보다 세밀한 작전지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귀네슈 감독에게 니폼니시의 한마디가 약이 될지 모르겠다. “한국 선수들에게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하재훈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장. 호남대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 2003년 1년간 부천 SK 프로축구 지휘봉을 잡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깨우쳤다. 당시 느꼈던 감독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직설적으로 풀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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