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꼬마는 세 살 터울의 언니, 옆집 오빠들을 따라 태권도장에 가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태권도보다 미끄럼틀과 공놀이가 재밌었다. 10살, 품새와 겨루기 시험을 보던 날이었다. 코치가 불렀다. “너, 선수부 할래?” 행복 끝, 고생 시작이었다.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것이 싫어 도망갔다가 잡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조건과 운동신경은 속일 수가 없었다. 승부근성까지 갖추니 어느덧 최고 선수가 됐다. 2004년에는 태권도 역사상 최초의 고교생 올림픽 대표로 아테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등의 서러움
눈물이 흘렀다.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동메달이 이렇게 서러운 것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메달리스트는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 “자, 금메달리스트들 오세요.”, “다음이요. 메달리스트들 나오세요.” 인터뷰, 사진 촬영, 각종 행사 때마다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선수들은 뒷전이었다. “솔직히 내가 들러리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18세 소녀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잊혀질 만 할 때쯤 “아버지가 약주를 한 잔 하고 들어오셨다”고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그제야 2004년 아네네 올림픽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경험부족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황경선(22·한체대)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남양주 집에는 금메달 확정의 순간, 부모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국내 유수의 방송사들이 장사진을 쳤다. 하지만 황경선은 1회전에서 중국의 뤄웨이에게 패했다. “철수.” 방송사 관계자들은 서둘러 짐을 꾸렸다. “세상이 참 매정하고 무섭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어요.” 운동에 대한 회의감까지 밀려왔다.
○4년을 넘어
어려운 시절 힘이 되어 준 것은 언니였다. 태권도 선수생활을 한 언니 황경애(25)씨는 황경선에게 항상 넘어야할 산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언니와 겨루기를 하다 코피가 나고 입술이 터지기 일쑤였다. 동생의 깔끔하지 않은 신발을 보면 따끔하게 혼을 낼 정도로 엄했다. 황경선은 “언니는 엄마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황경선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두운 성격이었다. “낯가림이 심해 누가 말을 시키면 얼굴 붉어지고 식은땀이 났다”고 했다. 그런 황경선에게 한체대 선배인 언니가 일침을 놓았다. “너 그런 성격으로는 (대학가서) 운동도 못하고 생활도 못해.” 어린 나이에 심한 충격이었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성격이 밝아지니 운동도 잘 됐다.
한국체육대학 문원재 교수는 입학이후 황경선의 4년 계획을 세워줬다. 문 교수가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김용승 박사와 검사한 결과 황경선은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다.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아테네 올림픽 이후 공허했던 마음을 목표의식으로 채웠다. 이제 대학 4학년, 그 마지막 목표가 베이징이다.
의욕에 불을 댕긴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황경선은 2006년 내측무릎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발을 뻗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다. 가볍게 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사이클, 물리치료, 마사지. 하루 종일 병원에서 지루한 재활훈련만 했다. “그 때 태권도가 너무 하고 싶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했다. 이제는 재미 없이는 운동을 안 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훈련 일정에 거스를 것이 없는 경지에 올랐다.
○올림픽 이후
황경선은 “4년 전에는 ‘무작정 돌격 앞으로’ 스타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멋도 모르고 의욕만 앞서 들어가다 보니 포인트를 뺏겼다. 지금은 공격을 하는 순간, 하나를 더 생각한다. 상대가 맞받아칠 경우까지 계산하니 되치기 당하는 경우가 적어졌다. 노련미가 붙어 “이번 올림픽은 자신 있다”고 했다. 체격과 스타일이 비슷한 아시아선수들은 쉽단다. 탄력이 좋아 순간적인 발차기가 뛰어난 유럽선수들에 대한 대비책이 금메달의 관건.
올림픽 이후를 물었다. “태권도도 재밌지만 내 생활을 가져보고 싶다”며 웃는다. 가끔씩 운동선수가 아닌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미팅과 소개팅, 대학 생활의 추억들. 황경선은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다.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본 기억도 가물가물.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털어놓았다. 그 꿈을 위해서도 금메달이 꼭 필요하다. 황경선은 “공부를 똑같이 열심히 하더라도 금메달리스트는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1등만이 대접받기 때문에 꼭 1등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철이 들어 싫을 때가 있다”는 이야기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자연스레 마지막 인사는 “사실 동메달도 값져요. 아니, 메달을 따든 못 따든 당신은 챔피언입니다”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