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스포츠현장]뻥슛에“오~멋진슛”…중계팀,말을잊다

입력 2008-04-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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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축구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선배와 함께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갔을 때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배가 지시를 내렸다. “양 팀 포메이션을 한 번 그려봐라.” 축구를 좋아하고 나름대로 보는 눈이 높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저게 스리백이야 포백이야. 미드필더 숫자는 4명? 3명? 저 공격수가 누구였더라?’ 그렇게 15분 정도가 지났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취재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옆 자리의 선배가 한 마디 던졌다. “너 뭐하고 앉아있냐?”26일 오후 용인종합운동장. 용인 시민구단과 광주 광산FC의 K3리그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중계석에 앉았을 때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정된 질문, 준비된 답변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플레이 따로, 해설 따로 기록 보느라 설명 생략도 허둥지둥 흘려보낸 90분 펜과 입은 너무 달랐다 ○방송 하루 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막상 체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덜컥 겁이 났다.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2시간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두배인 4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야. 방송이라는 게 워낙 돌발사항이 많이 발생하거든. 100가지를 준비해 가도 10가지 말하고 내려오기 일쑤니까.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하지마라. 지금까지 손으로 해왔던 것을 입으로 하는 거라 생각하면 돼.” 전화를 끊고 나니 더 심란해졌다. ‘지금부터 4시간동안 준비를 해봐? 그런데 뭘 준비하지? 손으로도 잘 못해왔는데 입이라고 잘하겠어?’ 가뜩이나 사진발 안 받는 얼굴도 걱정이다. 초초해지니 별게 다 신경쓰인다. K3 운영팀 김승준 씨의 말이 생각났다. “윤 기자님, 내일 메이크업 하셔야 될 걸요.” ○당일, 방송 1시간 전 여유 있게 도착하려는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 때문에 경기시작 1시간 전에야 겨우 도착. 방송을 같이 진행할 조종희(27) 캐스터와 김현일 해설자를 만났다. 대학교 동기인 둘은 대학시절부터 축구해설로 이름을 날렸단다. 교내 축구대회가 있을 때마다 중계 장비는 커녕 마이크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 소리 높여 축구해설을 해왔다니 오늘 중계자로의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본부석 중앙에 임시로 마련된 중계석. 카메라 3대와 카메라 콘트롤 유닛, 스위처, PGM 모니터 등등. 이름도 어렵고 조작법도 간단치 않아뵈는 각종 중계 장비들을 보니 방송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방송 30분 전 K3리그는 축구기자인 나에게도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K3 안기희(27) 명예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K3 명예기자는 1구단 1기자 체제로 운영된다. “용인 시민구단의 기본 포메이션은 포백이구요. 이용우 선수를 눈여겨보세요. 조커 전문인데 벌써 4골이나 넣었거든요.” 양팀 감독을 만날 차례. 먼저 박선근 용인시민 축구단 감독을 찾았다. 취재진을 만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박 감독이 “무슨 인터뷰냐”며 손사래를 친다. 간신히 설득해서 벤치 앞에 섰다. “상대 선수들은 나이가 어려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아요. 우리는 안정된 수비가 강점이거든요. 먼저 선취골을 넣은 후에 수비를 단단하게 해야죠.” ‘엥? 이건 요즘 K리그에서 불고 있는 공격축구 신드롬에 정면 배치되는 발언이신데….’ ○방송시작 방송 5분 전 인터넷 중계를 총괄하는 김상범 스포탈코리아 대표가 당부했다.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습니다. 초보 해설자들은 운동장만 응시하고 화면을 보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반드시 중간 중간 화면을 보면서 자막을 읽어줘야 돼요. 지금까지 방송사고 한 건도 없었거든요. 잘해봅시다.” 또 한 차례 부담감이 밀려온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섰고, 캐스터의 인사말과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윤 기자님, 경기 전에 박선근 감독을 만나고 오셨죠? 오늘 용인팀은 어떤 작전으로 나갈 거라 하던가요?” 비교적 대답하기 편한 질문이다. 캐스터의 배려가 새삼 고맙다. “용인팀의 장점은 안정된 수비에 있거든요. 상대 선수들에 비해 나이가 많으니까요. 후반전 들어 체력의 열세가 아마도 걱정일겁니다. 용인이 오늘 선취골을 넣을 수 있을 지가 승부의 관건이네요.” 시작은 나름 괜찮다. 그런데 4월 말의 축구장은 왜 이리 추운건지. 전반 12분 용인 김종천 선수가 광주 지역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튀어나온 볼을 그대로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이런 플레이는 적극 칭찬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열었다. “예, 정말 멋진 슛입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플레이네요.” 그런데 웬걸, 리플레이 화면을 보니 공은 골대를 한참 비껴갔다. 민망하다. 옆 자리의 캐스터와 해설자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에 민망해진다. ○골 그리고 또 골 해설을 하기 위해서나 취재를 할 때나 아니면 맥주를 마시면서 즐길 때도 축구를 보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역시 골이 터지는 순간이다. 전반 37분 경기 내내 밀리던 광주 박종윤 선수가 선취골을 터뜨렸다. “예, 골입니다. 드디어 골이 터졌습니다. 정말 멋진 슛이네요.” 3명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골 상황을 전달하기에 바쁘다. ‘아차, 이럴 때는 올 시즌 이 선수가 몇 번째 골을 넣은 건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줘야지.’ 그때서야 책상 위에 놓여있는 기록표를 뒤적거린다. ‘올 시즌 2번째 골이구나.’ 입을 열려고 할 때쯤 이번에는 용인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맞는다. “아, 안타깝습니다. 광주 골키퍼의 결정적인 선방이네요.” 결국 ‘박종윤 선수가 올 시즌 2번째 골을 터뜨렸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날 터진 골은 모두 4골. 나는 몇 차례나 방송 중계의 기본에 충실했을까?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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