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퍼거슨,불을뿜는가슴얼음품은머리

입력 2008-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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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스티브 브루스의 위건 전은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위한 EPL 마지막 시험이자, 시즌 더블을 향한 챔피언스리그 결승 상대 그랜트의 첼시 전을 앞두고 펼쳐질 마지막 리허설이기도 하다. 승부의 세계에서 2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 노회한 명장이 이토록 중요한 위건 전을 어떤 형태로든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팬들은 많지 않다. 특히 맨유에게 있어 원정경기라고는 하지만 맨체스터 도심에서 불과 16마일(26.6km)정도 떨어진 그레이터 맨체스터(대도시 행정구역)내 위건에서 열려 홈경기와 다를 바 없고, 백전노장 퍼거슨의 상대가 그의 밑에서 선수생활을 한 브루스이기에 더욱 그렇다. 브루스 위건 감독은 맨유의 위대한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배번 7번의 브라이언 롭슨 후임으로 맨유 주장을 역임하고 맨유 10년간 309경기에 출전해 36골을 기록했다. 이는 평균 8.6 경기당 한 골을 기록한 것으로 그가 수비수였다는 점에서 대단한 기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현역시절과는 다르게 브루스는 감독으로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퍼거슨은 현역시절 줄곧 스코티시 리그에 머물며 비교적 평범하게 선수시절을 마쳤으나 감독으로서는 EPL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우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존경 받는 감독인 ‘리버풀의 전설’ 빌 생클리를 능가하는 유일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퍼거슨이다. 맨유의 축구이사 보비 찰튼경이 신비로운 마력을 가진 감독이라고 한 퍼거슨에게는 다른 감독에게는 찾아 보기 어려운 탁월한 지도력이 있다.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 첫째, 퍼거슨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다. 이런 카리스마는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더불어 선수들에게 때로는 긴장을 풀 수 없는 공포감 수준으로 상승작용을 하기도 한다. 퍼거슨의 동생 마틴 퍼거슨은 자신의 형이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빈집에 형 혼자 있어도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 셀틱 감독 고든 스트라칸은 퍼거슨은 화에 의해 움직이며 화는 그에게 석유와 같은 연료라고도 했다. 데이비드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이후 퍼거슨에 대해 “그는 맞서서 말하기도 어려운 매우 공포스러운 감독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면 입술이 떨리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습니다” 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퍼거슨에게는 이런 무서운 면모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단점을 존중하고 한번 믿은 선수는 끝까지 믿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따뜻한 면도 있다는 것이 그가 감독으로서 가지는 두 번째 장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 출신의 에릭 칸토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칸토나는 퍼거슨 만큼이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 같은 선수였다. 퍼거슨은 칸토나의 재능을 간파하고 다른 이들이 실패한 칸토나 길들이기에 성공해 그의 잠재력을 피치에서 폭발시키게 한다. 만일 칸토나가 퍼거슨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그는 그라운드의 문제아 정도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퍼거슨은 칸토나가 훈련시간에 늦는 것도 복장이 불량한 것도 못 본 척했는데 다른 선수들이 같은 행위를 했을 때 육두문자를 각오했어야 했던 것에 비교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퍼거슨의 칸토나에 대한 인간적 배려는 크리스탈 팰러스 전에 있었던 그 유명한 쿵푸 킥 사건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경기에서 칸토나는 크리스탈 수비수 리처드 쇼를 발로 차 레드카드를 받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불상사는 그가 경기장을 나오는 순간 발생했는데 크리스탈 팬 한 명이 칸토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던 것이다. 이에 격분한 칸토나는 그 서포터에 달려들어 소위 이단 옆차기를 하게 되고 안전요원에게 끌려나갈 때까지 몇 차례 더 주먹질을 했다. 퍼거슨은 이 사건으로 칸토나가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징계를 받을지 모른다고 직감하게 된다. 이에 퍼거슨은 칸토나에게 자체적으로 4개월 출장정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FA의 중징계를 완화시키고자 한 조치였다. 결국 칸토나는 8개월이라는 FA공식 제재를 받게 된다. 이는 칸토나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와 같은 징계였으며 당시 블랙번과 리그 우승을 다투던 맨유는 결국 블랙번에게 챔피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퍼거슨에게는 아쉽게 우승을 내준 슬픔보다 선수생활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칸토나를 추스르는 일이 더 시급했다. 칸토나의 경기감각을 위해 지역 하위리그 팀과의 경기를 주선했던 퍼거슨은 FA로부터 어떤 형태의 경기에도 칸토나를 출전시킬 수 없다는 경고를 받게 되고 이에 칸토나는 희망을 접고 프랑스로 건너간다. 퍼거슨은 마지막으로 칸토나를 설득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 밤을 새우며 그에게 아직 미래가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런 퍼거슨의 노력 덕분에 칸토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징계 후 첫 경기 리버풀 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칸토나에 대한 퍼거슨의 인간적 신뢰관계는 그가 은퇴할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칸토나는 퍼거슨에게 자신의 은퇴계획을 말하고 당분간 비밀로 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퍼거슨이 당시 맨유 최고의 공격수로 잘 나가고 있던 칸토나의 갑작스런 은퇴를 끝까지 비밀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퍼거슨은 자신과 절친한 친구 사이인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에도 공식발표 때까지 칸토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심리전의 고수 세 번째는 그가 심리전의 대가라는 점이다. 1995-1996 시즌을 퍼거슨은 맨유 유스 멤버출신인 베컴,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 당시 신인으로 대거 물갈이를 하고 시작하게 되는데 개막전에서 애스턴 빌라에게 1-3으로 패하게 된다. 그 날 BBC에서 알렌 한센은 그 멤버로는 결코 이기지 못한다고 혹평을 하게 된다. 그러나 퍼거슨이 예상한대로 그 신인들은 어느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활약을 펼치게 되고, 캐빈 키건의 뉴캐슬을 맹렬히 뒤쫓게 된다. 선두 뉴캐슬을 따라 잡기 위해 퍼거슨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고도의 심리전이 있었다. 1996년 4월 17일 리즈와의 홈경기를 힘겨운 승리로 끝내고 퍼거슨은 만일 리즈가 오늘과 같은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면 올 시즌 하위권에 있지 않았을 거라며 앞으로 있을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도 맨유전에서 보인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12일 뒤에 벌어진 리즈 전을 승리한 뉴캐슬의 키건은 퍼거슨의 말을 의식해 “퍼거슨에게 오늘 경기의 테이프를 보내야 합니다. 오늘 리즈가 보인 경기력 정도면 퍼거슨이 바라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맨유를 물리치기를 열망합니다. 퍼거슨은 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축구는 정직입니다” 라고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대응했다. 이런 자극적인 대응에 퍼거슨은 “오 신이시여. 나는 키건을 동정합니다. 처음에 키건의 분노에 찬 말을 듣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경기의 정직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적했어야 할 옳은 일이었습니다” 라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퍼거슨은 키건이 마음의 상처를 잘 받고 감정적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퍼거슨의 노림수는 시즌 막판 맨유가 대 역전 우승을 함으로써 키건에 대한 완승으로 끝나게 되고 맨유는 이 시즌에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더블 더블을 달성하게 된다. ○영건 발굴의 귀재 마지막으로 퍼거슨은 끊임없이 유망주를 발굴해 맨유의 장기 전성 시대를 열어 왔다는 점이다. 첼시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적인 스타 급 선수로 정상에 올랐다면 베컴, 네빌, 긱스, 스콜스에서 나니, 박지성은 물론이고 호나우두에 이르기까지 재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하는 수완이 없었다면 오늘의 맨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임 매니저 론 앳킨슨이 다 완성된 선수만을 사려했었다면 자신은 젊은 재능이 자라는 것을 항상 선호해왔다고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베컴은 퍼거슨을 아버지에 비유하며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해 모두가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지도력은 다른 감독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요크(영국) | 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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