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메이저리그에도 그늘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숨겨진 혹은 보이지 않는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듯합니다. 1년에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스타들 속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생태’를 이해하는 데는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아,참고로 다들 아시겠지만 에이전트는 물론 도우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 도우미들을 가장 친숙하게 부르는 호칭은 라이퍼(lifer)입니다. 많은 도우미들이 한번 메이저리그 삶에 익숙해지면 평생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lifer라고 부른답니다. 실제로 뉴욕 메츠에 근무하는 왕고참 도우미 중에는 환갑을 넘은 분도 있습니다. 이 라이퍼의 상당 부분은 클럽하우스를 지키는 클러비(clubbie)들입니다. 선수들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는 선수들의 빨래와 클럽하우스 정리정돈입니다. 선수 한명이 하루에 적지않은 빨랫감을 내놓기 때문에 이들은 근무시간의 반을 세탁기와 씨름하게 됩니다. 각 클럽하우스에는 약 15명 가량의 클러비들이 배치되며 홈팀 클러비들과 원정팀 클러비들은 완전히 나눠져 있습니다. 이들은 빨래 외에도 스파이크 관리, 선수들의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해야합니다. 비록 선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지만 야구장 밖에서는 엄청난 파워를 과시하는 게 이들의 특징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욕 최고의 나이트클럽, 각종 콘서트, NBA 농구경기 티켓 등 보통 구하기 힘든 것은 클러비들에게 부탁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티켓구하기에 관한 한 불가능은 없답니다. 그게 아무리 매진된 콘서트라 해도, 혹은 뉴욕에서 가장 물좋은 나이트 클럽이라고 해도 말이죠. 클러비의 전화 한통이면 신기하게도 티켓이 해결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들 클러비 파워의 원동력이 무언가 하면 바로 야구스타와의 친밀성입니다. 야구선수와 워낙 친해 티켓을 제한없이 확보할 수 있고, 바로 그 티켓을 나이트클럽이나 콘서트홀 등 다른 직종의 클러비들에 뿌려 ‘조직관리’를 평소에 해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철저하게 ‘Give & Take’ 사고방식의 미국. 아시겠죠?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또 하나 재밌는 그들의 삶은 바로 수입에 관한 부분입니다.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이 ‘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세금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아셨겠지만 바로 그 ‘짭짤한’ 수입이 그들을 쉽게 떠나지 않는 라이퍼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팀이 우승했을 경우 상당수 도우미들은 선수들과 동일한 우승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참고로 최근 5년 동안 보스턴 펜웨이파크 선수 파킹도우미들의 포스트시즌 배당금만 해도 50만달러가 넘는다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차요원으로, 세탁요원으로 온갖 궂은 일을 맡아하는 억대연봉 도우미들의 세계는 100년 이상의 메이저리그 역사가 만들어낸 한 단면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