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강,수렁에서건진‘베이징티켓’

입력 2008-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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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휘슬이 울렸다. 김재강(21·영남대)은 매트에 드러누웠다. 두 눈은 물기로 젖었다. 고된 훈련에도 한 번도 흘려보지 않은 눈물이었다. 김재강은 “중학교 시절, 체중조절에 실패해 경기에서 진 이후 레슬링 때문에 울어본 것은 두 번째”라고 회상했다. 또 “심판 탓을 해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6월13일, 베이징올림픽파견 자유형 120kg급 최종평가전 직후 태릉레슬링장의 풍경이었다. 당시 김재강은 라운드스코어 1-1 상황에서 3라운드 종료 10초전까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다는 이유로 1차 경고를 받은 상황이라 김재강은 고승진(조선대)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심판은 엉뚱하게도 종료 10초전 김재강에게 벌점(caution) 1점을 줬다. 결국 베이징행 티켓은 고승진의 몫이었다. 대한레슬링협회는 6월18일 긴급 상임이사 및 강화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자유형 120kg급에 대한 재평가전을 열기로 결정했다. 심판판정에 대한 문제를 인정한 셈이었다. 2일, 태릉레슬링장은 50여명이 넘는 영남대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영남대 관계자는 “기세 싸움부터 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재경기는 김재강에게 기회이자 짐이었다. “패할 경우, 레슬링 선·후배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아 부담이 컸다”고 했다. 경기장을 찾겠다는 어머니까지 억지로 뜯어말렸다. 10년간의 레슬링선수 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다는 경기, 결국 김재강은 라운드스코어 2-1로 고승진을 눌렀다. 1988서울올림픽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협회 한명우 전무이사는 “스피드와 기술에서 김재강이 앞섰다”고 평했다. 자유형 120kg급은 메달획득이 어렵다는 것이 중평이다. 김재강은 원래 96kg급 선수다. 한국이 96kg급에서 올림픽쿼터를 획득하지 못하면서 120kg급으로 급선회했다. 레슬링관계자는 “1회전 통과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편파판정 논란이 묻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남대 김익희 감독은 “올림픽은 모든 선수의 꿈”이라면서 “메달 이전에 평생 올림픽대표선수였다는 자부심이 남는다”고 했다. 김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긴다. 김재강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면서 “경기는 해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달획득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레슬링에 대한 회의까지 느꼈던 유망주가 삶의 목표를 다시 찾은 순간이었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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