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에서 마지막 한 발이 주는 긴장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4년을 땀 흘려 준비해 온 올림픽 무대 결선 라운드라는 중압감이 더해지면, 평생을 사격에 매달려온 선수들도 실수를 하고 만다.
국제사격연맹(ISSF) 홈페이지는 17일 2008 베이징올림픽 사격 50m소총 3자세 결선에서 마지막 한 발을 4.4점에 쏘며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친 매튜 에몬스(미국)에 대해 “오직 에몬스만이 에몬스를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아내 카테리나 에몬스(체코)와 잉꼬 사격 부부로 이번 올림픽에서 유명해진 매튜는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3.3점을 앞서 있었다. 10.9가 만점인 표적에서 7∼8점만 따면 그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4.4점을 쏘면서 1위에서 4위로 추락했다. 4년 전 아테네에서도 마지막 한 발을 남의 표적에 쏘는 바람에 1위에서 최하위로 추락한 악몽이 재현된 셈이다. 흔히 말하는 새가슴 선수의 전형을 보여준 매튜다.
사격인들은 매튜의 경우 “선수 본인이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매튜 에몬스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국의 진종오도 12일 50m권총에서 2위에 1.9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에 8.2점을 쏘며 다 잡은 금메달을 날릴 뻔했다. 그는 4년 전에도 결선 7번째 발에서 6.9점을 쏘며 손에 들어왔던 금메달을 넘겨준 바 있다.
평생 총과 함께 해온 선수들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총질’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사격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고도의 정신 통제력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사격에서 평생 한 번 나서기도 힘든 올림픽에 출전한 보통의 선수들은 사대에 서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의 심적 부담을 갖게 된다는 것. 팽팽한 긴장감과 올림픽 무대라는 중압감은 선두를 달리고 있을 때 더욱 커지며, 마지막 한발을 잘 쏘면 그대로 금메달을 따는 상황에서는 극에 달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0m소총 복사 우승자 이은철은 “올림픽에서 한발을 남기고 선두를 달리는 심정은 일반인이 숫자 하나만 더 맞으면 로또 1등에 당첨된다는 것을 알 때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 때문에 마지막 10발로 승부를 가리는 결선에 나서는 선수들은 ‘절대 본인 성적과 남의 성적을 의식 및 계산하지 말 것’과 ‘본선에서 쏜 수준 만큼만 쏜다고 생각할 것’ 등을 주문받는다고 한다.
고도로 정밀화된 선수들의 총은 선수들의 마음 속 동요까지 가감 없이 점수로 반영시킨다는 것도 ‘황당한 총질’의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특히 50m권총이나 50m소총 종목에서 쓰는 총은 방아쇠 압력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미세한 손가락의 떨림에도 발사되기 일쑤다.
“소총 종목에서 보통 선수들은 100g 미만 압력에 발사되는 방아쇠를 쓴다. 달걀을 살짝 움직이게 할 정도의 힘만 쓰면 발사되기 때문에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조준을 하는 도중에 손가락을 움직여서 황당한 점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이은철은 전했다.
매튜 에몬스도 “표적지 중심을 겨냥하기 위해 총을 낮추던 도중 갑작스럽게 총이 발사됐다”며 4.4점에 대해 설명했다. 바로 옆 선수 표적을 쏘는 일도 믿기지 않지만 50m 떨어져서 표적을 보는 사수의 입장에서는 옆 표적과의 거리 차가 얼마 되지 않아 종종 혼돈하게 된다고 한다.
군에 입대해 훈련소에서 처음 실사격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올림픽 사격은 표적지를 향한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 마음과의 싸움인 것이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