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결산방담]“육상불모지에‘과학의꽃’피워보자”

입력 2008-08-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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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은 스포츠와 과학의 결합이 왜 중요한 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대회였다. 수영이나 역도, 태권도 등 스포츠과학의 도움을 받은 종목들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정신력 만으로 정상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과학에 근거한 체계적인 훈련만이 금메달을 담보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시킨 베이징올림픽이었다. 4년간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던 체육과학연구원(KISS)의 보람도 그 만큼 컸다. 스포츠과학의 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는 8월28일 KISS 연구원들과 함께 베이징올림픽을 결산하는 방담을 가졌다. ○ 올림픽과 스포츠과학의 힘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이순호: 스포츠과학이란 오랜 시간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누적된 결과물이다. 몇 개월이나 단 1년 만에 이뤄진 성과는 아니다. 어려운 점,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연구원들이 현장에서 꼼꼼하게 챙겼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최규정: 선수단과 연구원의 관계가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선수단의 요구에 연구원들은 사명감으로 부응했다.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과학적인 지원 측면에서는 만족한다. 김용승: 이제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스포츠과학을 통한 경쟁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그것이 부각된 올림픽이었다. ○ 역도가 스포츠과학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종목 중 하나로 꼽는데. 문영진: 이번 올림픽을 통해 느낀 점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체제를 갖춰야한다. 스포츠과학은 여유있게, 긴 시간을 가지고 해야한다. 장미란은 5-6년 정도의 긴 시간을 통해 고쳐나갔다. 기술이나 밸런스 등 잘못된 점을 영상분석 등을 통해 발견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물론 사재혁은 1년 정도 만에 맞췄다. 단점을 건드려주니까 정확히 1년 정도에 기술이 향상됐다. 윤성원: 역도는 경기 운영과 과학적 접근의 접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 지도자와 연구원간에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근력의 불균형이나 기술동작을 직접 모니터하면서 눈으로 확인했고, 연구원은 가장 적절한 보강 프로그램을 건의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메달리스트들이 “신뢰감 주는 과학적 이론”이라고 평가한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최규정: 아테네 이후 체계적으로 됐다. 선수들의 체력분석을 통해 동작 기술을 방법론적으로 적용했다. 장미란은 바벨을 수평적으로 들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특히 한국선수들은 인상이 약한데, 이를 개선했던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역도 이외의 종목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는데. 이순호: 박태환의 수영을 빼놓을 수 없다. 전지훈련 통해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왔다. 송홍선 박사가 현장에서 생리학을 접목시킨 것은 물론 다양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훈련방법을 개선했다. 체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심리학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동안 심리학의 노하우가 결실을 봤다고 본다. 김용승: 4개의 금메달을 딴 태권도는 경기 직전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데 주력했다. 면담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겨우 1-2분이다. 출전선수가 4명이니까 예선부터 결승까지 4번씩 총 16번 면담을 했다. 긴장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하면 안되니까 현재의 부상정도나 경기의 중요도 등을 면밀히 따져 접근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의 여망이 너무 큰 데 따른 부담이 있다면 “시각을 밖으로 가져가지 마라” “니가 왕이다”든가,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넌 뭘 해도 예쁘다”고 말해줬다. 앞에서 동료들이 금메달을 딴 상태라면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이럴 경우 차라리 “지금 따는 금메달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른 선수들이 다 땄으니까. 40-50대 됐을 때 금메달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며 부담을 줄여줬다. 하지만 결승에 가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국민들이 금메달을 바라기 때문에 실력을 보여줘야한다” “나 같으면 이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올인하겠다” “40-50대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라”고 조언해줬다. 김광준: 복싱은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을 잘했다. 아테네 때 7-8kg까지 오버되던 체중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2.9kg이 넘지 않았고, 베이징에 갈 때는 1.5kg 정도만 오버됐다. 베이징에서는 400-500g 정도가 차이 날 뿐이었다. 개별 훈련 프로그램을 주면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 가장 인상에 남았던 선수나 경기가 있었다면. 김광준: 복싱 백종섭의 경우가 가장 안타까웠다. 메디컬체크에서 경기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선수 본인은 끝까지 뛰겠다고 했다. 선수가 링 위에서 이상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고, 그때 수건을 던져 경기를 중단하면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생명이 걸려있었고, 처자식이 있는 선수를 링 위에 올린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윤리적인 측면을 택했다. 더불어 김정주의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결승 진출을 못해 복싱계를 더 살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고 해 내 가슴이 찡했다. 개인의 영광 보다는 선수들은 자신의 종목의 영광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김영수: 유도 최민호의 연속된 한판 승부는 너무 시원스러웠다. 지난해 세계 선수권에서 3위, 올해 파리오픈에서 2위를 했는데, 면담을 통해 올림픽에서는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심어줬다. 최민호는 체중 관리를 잘 했다. 아테네에서는 5kg 이상 오버됐지만 이번에는 2-3kg 선이었다. 컨디션 유지에 도움이 됐다. 또 국내나 세계선수권에서는 오전 7시에 계체를 하고, 9시부터 경기를 갖는데 베이징에서는 오전 7시 계체, 낮 12시 경기여서 회복할 시간이 많았는데, 최민호에게 도움이 됐다. ○ 미흡한 점도 많을텐데, 어떻게 보완해야하나. 신정택: 처음 올림픽 현장에 가봤다. 현장에서는 선수와 교류를 많이 가졌다. 하지만 스스로 반성한다면 선수 중심으로 가야되는데도 내 중심으로 맞춰간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또한 말하기 편한 선수나 유명 선수 위주로 한 것이 아닌가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심리적으로만 분석했지, 기술 등에 대한 지원은 소홀했다고 스스로 후회해본다. 이순호: 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심리, 기술, 체력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야만 진정한 스포츠과학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영수: 종목에 대한 전문성을 가져야만 스포츠과학이 꽃 피울 수 있다. 더불어 지도자도 스포츠과학을 신뢰해야하고, 지도자와 연구원간의 신뢰도 중요하다. 선수, 지도자, 연구원 모두가 의기투합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윤성원: 당초 목표 이상의 G7을 달성했다. 하지만 다음 대회에도 이같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종합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그래야 성적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가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이 한정되어 있고, 거기서 1,2개 추가된다. 수성을 위해서는 확실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최규정: 금메달의 집중력을 볼 필요가 있다. 상위권 중 한국은 중국에 이어 금메달 집중력이 2위다.(중국은 메달 100개 중 금메달이 51개로 51%, 한국은 31개 메달 중 13개로 41.9%, 영국은 47개 메달 중 19개로 40.4%). 집중 전략 종목을 선택해서 빛을 발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유지돼야한다. 스포츠가 국민의 생활이나 감정에 끼치는 긍정적인 요소에 공감한다면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 진력해야한다. 현장과 연구 파트의 효과적인 접목과 더불어 연구와 행정파트도 한 식구가 되는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순호: 팀운영에 있어 전문화가 필요하다. 총력을 쏟을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변화를 꾀해야한다. 이는 곧 통합적인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이럴 경우 산만한 체계는 없어질 것이다. 김광준: 영국 복싱팀의 경우 한 선수에 지원 스태프가 5명이나 붙었다. 김정주가 4강에 오른 뒤 나더러 끝까지 있어달라고 했는데,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라. 덧붙인다면 연구원에 대한 인식이 재조명돼야한다. 연구코치로서 뛰어다닐 수 있는 자격요건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윤성원: 현 시스템에서는 방법이 없다.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한다. 현장에서 요청하기 전까지는 음지에서 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연구코치라는 시스템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박세정: 베이징에는 가지 않았지만 이번에 많은 공부를 했다. 연구원들끼리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모습에서 충분한 협력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성봉주: 육상 단거리를 휩쓴 자메이카의 경우 10년 이상 투자한 결실이다. 선수 선발이나 훈련 등에서 미국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와 지도자 육성이 기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는 것은 예산상의 문제도 있다. 기초 스포츠를 키워야한다지만 미래가 밝지 않기 때문에 자꾸 종목을 바꾼다. 이번 올림픽에는 코치진들도 많이 보냈어야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문영진: 육상은 선택과 집중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한두 종목이라도 집중해서 키워야 ‘육상의 박태환’이 나올 수 있다. 김용승: 우리 체형에 맞는 기초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코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 자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연구원들에게도 AD카드(출입 허가증)를 줘야한다. 연구원들이 꼭 필요한 경우에도 관중석에서 보거나, 아니면 표가 없어 아예 입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 대회부터 반드시 고려되어야한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AD를 배분해야한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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