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아메리카]美4대스포츠‘수장’해부

입력 2008-1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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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커미셔너?남의나라얘기!”
커미셔너(Commissioner)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 가운데 최고위직이다. 미국 스포츠계에는 커미셔너가 무수히 많다. 대학 스포츠 컨퍼런스에도 커미셔너가 있다. 이해충돌이 있을 때 이를 조정하는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의 커미셔너는 조정도 중요하지만 많은 권한을 부여받아 때로는 독재자처럼 군림하기도 한다. 커미셔너를 구단주들이 선임하지만 직책에 오른 뒤에는 막강 커미셔너십 발휘로 종종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스포츠에 커미셔너 제도가 처음 도입된 곳은 메이저리그였다. 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도박연루 블랙삭스 스캔들로 연방판사인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를 1920년에 임명했다. 이후 1941년 NFL(풋볼)이 뒤를 따랐고, NBA(농구)는 1967년, NHL(아이스하키)은 1993년에 커미셔너 제도를 받아 들였다. 조만간 한국야구위원회 신상우 총재가 사임한다. 벌써 정치권에서 누가 총재로 임명될 것이라는 등의 하마평이 무수하다. 그동안 워낙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오고간 탓에 명예직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책임과 권한이 막강한 자리에 명예직은 어울리지 않는다. 메이저 종목 커미셔너들은 NHL을 제외하고 연봉이 1000만달러대다. 신 총재의 사임을 계기로 미국 4대 메이저 종목의 커미셔너를 살펴보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낙하산이 아니고 해당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파들이라는 점이다. ○버드 셀릭 MLB 커미셔너 메이저리그만 ‘커미셔너 오브 베이스볼’로 통한다. 농구의 경우 ‘커미셔너 오브 바스켓볼’로 부르지 않는다. 그만큼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전통과 권위를 갖고 있다. 현 셀릭(74) 커미셔너는 92년 페이 빈센트가 물러난 뒤부터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수장으로 있다. 93년부터 98년 초반까지는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를 겸해 커미셔너 대행이었다. 98년 중반부터 실질적인 커미셔너로 일하고 있다. 요즘도 대부분의 시간은 밀워키에서 지낸다. 지난 시즌 구단주들이 셀릭의 공로를 인정해 계약을 연장, 2012년까지 커미셔너직을 수행하게 된다. 보위 쿤(19년) 이후 최장수 커미셔너다. 셀릭 시대의 오명은 약물이다. ‘스테로이드 시대’의 한복판에서 전혀 정화를 하지 못했다. 지난 2006년 다소 ‘사후약방문’격이 됐지만 금지약물조사위원회를 구성, 미첼 보고서를 통해 추후 방지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셀릭 시대는 과보다 공이 더 많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흥행을 위한 와일드카드 제도(94년)와 인터리그(97년) 도입, 탬파베이 레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두 신생팀 창단, 심판진의 통합리그, 올스타 승리 팀의 월드시리즈 어드밴티지,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출범, 새로운 구장 건설 붐등이 셀릭 시대에 이룬 업적들이다.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 NFL 커미셔너는 미국 스포츠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자리다. 구델(49)은 2006년 9월1일부터 전임 폴 타글리아부의 뒤를 이었다.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NFL을 메이저 종목 최고 스포츠를 끌어 올린 타글리아부는 2006년 8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1982년 NFL 인턴사원으로 출발한 구델은 조직을 두루 거친 정통 NFL 맨이다. 그는 현재 짧은 재임기간 동안 커미셔너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스포츠 팬들은 4대 종목 커미셔너 가운데 구델이 가장 일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을 정도다. 구델이 2006년 9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뒤 NFL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대부분 선수들의 불미스럽고, 리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들이었다. 선수가 직접 관련된 총기사고, 경범죄, 폭행, 투견 등 추문이 헤아릴 수 없었다. 구델은 이들에게 강력한 출장정지 징계로 다스렸다. 출장정지는 연봉을 받지 못한다. 슈퍼볼 챔피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상대 뉴욕 제츠 디펜스의 시그널을 비디오로 훔쳐본 ‘스파이 게이트’ 때는 당사자인 빌 벨리칙 감독에게 50만달러 벌금, 구단은 25만달러 벌금에 2008년 드래프트 1차지명권을 과감히 박탈했다. 구델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팬들과 구단주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임 타글리아부 커미셔너가 천문학적 방송권 계약은 모두 체결해 놓은 상태. 경기 침체로 최근 500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데이비드 스턴 NBA 커미셔너 아이비리그 콜롬비아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스턴(66)은 1984년부터 NBA 커미셔너로 일하고 있다. 제3대 커미셔너인데 올해로 24년째다. 사무총장까지 지낸 것을 고려하면 42년을 NBA에서 봉사했다. 2대 래리 오브라이언(NBA 우승 트로피를 ‘오브라이언 컵’으로 부른다) 커미셔너가 제도를 정비하고, NBA의 뿌리를 내렸다면 스턴은 확실하게 결실을 맺은 수장이다. 23개 팀에서 30개 팀으로 프랜차이즈가 늘어났고, NBA를 글로벌 스포츠화한 주역이 스턴이다. 물론 스턴은 타이밍도 좋았다. NBA는 80년대 이전까지 선수들의 약물복용, 코트에서의 난투극 등이 끊이지 않아 메이저 종목 가운데 가장 하류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79년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흑백 라이벌 탄생,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출현 등으로 인기가 폭발하면서 NBA는 단숨에 엘리트 종목으로 뛰어 올랐다. WNBA와 NBA 하부리그격인 NBDL도 발족시켜 농구발전에도 앞장섰다. 스턴은 NBA의 독재자로 통한다. 지난 2007시즌이 들어가기 전 힙합을 선호하는 젊은 선수들에게 드레스 코드를 강화해 이를 관철시켰다. 올드스쿨 지도자 타입으로 통한다. 그러나 지난 시즌 심판 팀 도나히의 도박 스캔들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개리 베트맨 NHL 커미셔너 NHL 커미셔너의 가장 큰 고민은 미국 방송사와의 TV 중계권과 수입분배 구조다. NHL이 캐나다에서는 최고를 자랑하고 있지만 시장이 큰 미국에서는 정작 인기가 없다. 메이저 방송사의 중계권 확보가 어려워서다. 현재 지상파 NBC가 중계권을 갖고 있으나 리그와 수입분배 조건이다. 베트맨 커미셔너도 지난 93년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메이저 종목 커미셔너의 특징은 큰 결함이 없는 한 장기재임이라는 점이다. 베트맨 커미셔너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지난 2004-2005시즌으로 구단주들의 손을 들어 한 시즌 동안 ‘직장폐쇄’를 했다. 당시 구단주들은 리그의 수입보다 선수들의 연봉이 더 많이 올라가고 있다며 샐러리캡 하향을 주장했다. 결국 선수들의 반발로 한시즌 링크가 문닫는 아픔을 맛봤다. 베트맨도 아이비리그 코넬 대학과 뉴욕 로스쿨을 나온 법률가 출신이다. 그 역시 재임동안 프랜차이즈를 6개 팀이나 늘려 현재 NBA처럼 30개 팀으로 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LA |문상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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