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이승엽(사진)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승선시킬 수 있을까. 거의 유일하고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김인식 감독은 시도하고 있다. ‘뽑아놓고 기다린다.’
말이 쉽지 엄청난 인내력과 정밀한 협상력이 최적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일단 외부 변수를 제거하고, 핵심인 이승엽의 결단을 촉구하는 접근법이다.
이 작업이 되려면 선결 조건은 외부에서 말이 안 나와야 된다. ‘협상 9단’ 김 감독이 극도로 언급을 자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했다’고 자책하는 이승엽에게 지금 답을 구해봤자 “곤란하다”가 모범답안이란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이승엽의 불참을 종용하는 듯한 ‘2군행 시사’발언을 했다고 모 인터넷 매체가 스포츠닛폰을 인용해 보도했다. 확인 결과 스포츠닛폰은 “그런 기사를 쓴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오히려 이 신문 측은 “하라는 이승엽을 4-5번 타순에 넣고 싶어 한다. 지금 시점에 2군행 언급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스포츠동아 김일융 일본통신원은 “이승엽이 참가한다고 선언하면 요미우리는 허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요미우리는 시즌을 감안해 이승엽을 2월 미야자키 캠프부터 관리하길 원한다. 이 기간 이승엽의 정신개조에 주력할 것이다.
그런데 2-3월 한국 대표팀에 가 있으면 요미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게 되고, 훈련량과 방식도 일본과 달라 시즌 적응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고 요미우리의 속내를 설명했다. 결국 “오가사와라, 라미레스, 아베 3명 외엔 주전 보장이 없다”란 하라의 발언은 이승엽 배제가 아니라 이승엽을 핵심전력으로 쓰고 싶어 하는 각성 촉구로 읽어야 옳다.
아시아시리즈 취재 기간 만난 일본 야구 관계자는 하나같이 “이승엽의 입지가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베이징올림픽 때처럼 일본의 극우언론이 몽니를 부릴 소지도 있다.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이승엽이 납작 엎드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승엽의 마음을 돌리려고 주변부터 치는 것이다. 판이 이렇기에 최후담판 시점이 무르익을 때까진 침묵이 약인 셈이다.
김영준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