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골프대디上]신지애-서희경-김하늘아빠는‘싱글족’

입력 2009-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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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선수들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누구일까? 수억 원을 후원하는 스폰서와 넘치는 사랑을 전달하는 팬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아빠’를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골프아빠’ ‘골프대디’다. 골프 선수들에게 부모는 때로는 스승이면서, 동반자이자 캐디에 운전기사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빛과 그림자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연장 혈투 끝에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박세리는 그린으로 뛰쳐나온 아버지 준철 씨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국 낭자의 성공 뒤에도 ‘골프아빠’들의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한때 미국언론에서 ‘한국의 극성스러운 골프대디들’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되새겨보면 한국 여자 선수들에게 LPGA를 점령당한 미국 언론들의 질투 섞인 푸념에 불과하다. 열 시간을 넘게 운전대를 잡고, 20kg이 넘는 골프백을 메고 나흘씩 필드를 거니는 골프아빠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한국골프도 없었을지 모른다. ‘골프아빠’를 국어사전에서는 ‘골프 선수인 자식을 따라다니며 극성스럽게 뒷바라지하는 한국의 아버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새해에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들을 길러낸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라고. ○대부분 선수 골프입문 영향…실력도 딸 못잖아 “아빠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그게 인연이 됐어요.” 프로골퍼들에게 골프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물으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빠의 영향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들과 딸을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키워낸 아빠들의 골프실력은 얼마나 될까? 먼저 ‘골프대디’의 원조격인 박세리(32) 부녀. 부친 준철(56) 씨의 골프실력은 US오픈에서 골프대디들을 상대로 따로 대회를 열면 아마 2연패는 자신할 실력이다. 심심찮게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하는 고수 중의 고수다. 장기는 드라이버 샷이다. 펑펑 터지는 장타 덕에 레귤러티보다 프로들이 사용하는 백티(챔피언티)에서 플레이한다. 백티에서는 70대 초중반, 레귤러티를 기준으로는 수시로 언더파를 친다. 장타자는 쇼트 게임이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준철 씨는 쇼트 게임 실력도 뛰어나다. 특히 퍼트가 장점인데 2m이내의 쇼트 퍼트 성공률은 100%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함께 플레이했던 지인들에 따르면 “쇼트 퍼트 실력만큼은 박세리보다 아빠가 더 낫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두둑한 배짱은 부전여전이었다. 여기서 잠깐,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2008년 국내 여자골프를 3등분한 신지애(21·하이마트), 서희경(23·하이트), 김하늘(21·엘로드)의 공통점은? 정답은 아빠들이 모두 ‘싱글족’이다. 혼자 사는 ‘싱글’이 아닌 핸디캡이 모두 ‘싱글’이다. 지존의 아빠들답게 실력도 호각지세다. 으뜸은 김하늘의 부친 종현(45) 씨다. 2008년 김하늘이 3승으로 셋 중 가장 적은 승수를 올렸지만 아빠들의 핸디캡에선 셋 중 최고다. 베스트 스코어가 2언더파인 준 프로급이다. 딸이 프로가 된 이후부터는 캐디를 보는 일이 많아져 라운드 횟수가 줄었지만 그렇더라도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평균적으로 70대 중반정도는 친다. 11승을 따낸 신지애의 부친 재섭(48) 씨는 한때는 70대 스코어를 치는 싱글 골퍼였지만 딸이 선수로 나선 이후부터는 골프와 담을 쌓고 있다. 골프채를 잡아본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다. 6승을 따낸 서희경의 부친 용환(50) 씨도 빠지는 실력은 아니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가 일품으로 베스트스코어는 2오버파다. 골프아빠들의 실력이 워낙에 뛰어난 탓에 평범한 실력처럼 보이지만 어디 가서 ‘타짜’ 노릇도 할만한 실력이다. 이들 골프아빠는 딸 못지않은 실력에 캐디를 보면서 눈썰미까지 더해져 보는 눈은 PGA 프로급이다. 그래서 필드에서 종종 말씨름을 할 때가 있다. 클럽 선택이나 그린에서 경사를 읽으면서 가끔씩 생기는 의견충돌이다. 서용현 씨는 “가끔 딸이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는 차라리 클럽을 뺏어 대신 플레이하고 싶을 때도 많죠. 그렇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얼마나 긴장되겠어요”라며 살짝 애환을 털어 놓았다. ○‘열혈’ 골프 엄마도 있다  골프아빠 못지않은 ‘골프엄마’도 있다. 배상문(23·캘러웨이)의 모친 시옥희(51)씨는 골프아빠 열 몫을 혼자 감당하는 골프엄마다. 그 무거운 백을 메고 거의 모든 대회의 캐디로 나선다. 워낙 깐깐한 성격 탓에 가끔은 극성스럽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을 뿐이다. 프로가 된 배상문과 모친 시옥희 씨는 필드에서 자주 말씨름을 한다. 플레이를 앞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언성이 오고가는 장면이 가끔씩 목격된다. 그 때문에 많은 오해도 받지만 배상문은 “그래도 엄마가 캐디를 봐줄 때가 가장 든든해요. 중요한 순간에는 저보다 엄마의 판단이 더 정확할 때가 많죠. 그래서 엄마에게 더 의지하게 돼요”라고 말한다. 자식 못지않은 수준급의 실력을 과시했던 골프아빠들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골프채를 내려놓은 채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다. 클럽 대신 백을 메고 있는 골프아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태극낭자들도 없었을 것이다. 필드에서 함께 흘린 땀방울이 우승으로 되돌아 올 때 골프아빠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다. 주영로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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