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천사’연아,눈물펑펑…왜?

입력 2009-03-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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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전담에이전트구동회부사장의현장리포트
김연아는 ‘대인배 김슨생’이라는 별명답게 웬만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연기가 맘에 안 들어도, 완벽한 연기를 했어도 담담한 미소를 던지거나, 환한 웃음을 뿌릴 뿐 쉽게 눈시울을 붉히지 않는다. 이번 세계피겨선수권에서도 쇼트프로그램에서 76.12라는 전대미문의 신기록을 세웠지만 싱글벙글 웃었을 뿐이다. 멀리서 김연아의 감동적인 연기를 지켜본 김연아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신기록 작성의 당사자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지금까지 세계피겨 역사상 깨보지 못했던 200점 고지를, 그것도 훨씬 넘어 207점의 대역사를 쓰고 한국 피겨사상 처음 세계피겨선수권 금메달의 금자탑을 쌓았으면서도 그녀는 강철나비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상식이 열리고 포디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선 김연아는 1만여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기가 오르고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이지만 이때처럼 눈물을 펑펑 흘린 적은 없었다. 시상식과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연아에게 “그렇게 울지 않는 너였는데 이번에는 너답지 않게 왜 눈물을 흘렸냐”고 물었더니, 김연아는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시상대 위에서 2위와 3위의 인사를 받은 뒤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 울컥 울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2년 동안 김연아 옆에서 그녀의 기쁨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했기에 김연아의 눈물의 의미를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김연아와 세계선수권의 악연은 2년전부터 시작됐다. 2007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시니어 데뷔전을 치르면서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 금메달의 꿈을 키웠지만 엉치뼈 부상과 허리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차례 엉덩방아를 찧으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지난해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이었다. 갑작스런 고관절 부상으로 4대륙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했던 김연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세계선수권에 출전해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쇼트 프로그램에서 6위를 한 뒤 프리스케이팅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혼신을 다해 프리스케이팅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아사다 마오와 캐롤리나 코스트너에게 내주고 말았다. 김연아는 시즌을 마무리하는 가장 큰 대회인 세계선수권 때마다 부상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세계챔피언의 꿈은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그 후 김연아는 상습적으로 잘못된 에지를 사용하는 선수들에게조차 쉽게 내리지 않는 ‘롱에지’ 판정으로 심한 심적 부담을 가진 데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배점으로 금메달을 따고도 항상 마음에는 앙금이 남았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김연아는 마침내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김연아가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리던 순간 김연아 어머니는 “저렇게 잘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부상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라며 세계선수권 시상대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순간들을 안타까워했다. 김연아의 눈물 속에는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과 함께 부상으로 좌절해야 했던 아픈 기억들에 대한 회한, 피겨 약소국 선수로서 겪어야 했던 불평등의 아픈 통증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구동회 IB스포츠 부사장 스포츠지 축구팀장, 영국 유학, 월드컵마케팅대행 등 다양한 경험을 했고, 현재는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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