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선수협,추진배경·문제점]‘선수노조설립’왜하필지금?

입력 2009-04-28 21: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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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프로야구선수협회 손민한 회장(왼쪽)과 권시형 사무총장이 28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손민한 회장(롯데)과 권시형 사무총장은 28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선수노동조합’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의단체로는 선수들의 권익 향상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선수노조 추진의 표면적 이유였다. 손 회장은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현행 법률에 의거, 단체행동권과 협상권을 보장받는 노조를 설립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왜 지금인가? 손 회장은 자신이 노조설립추진위원장을 맡고 구단별 2명씩의 추진위원을 둬 노조 설립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각 구단 선수들의 총의를 모았다. 외압과 회유 공작이 예상되고 피해를 보는 선수가 나오더라도 하나로 똘똘 뭉쳐 반드시 노조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즌이 한창인 지금 선수협이 왜 갑자기 노조 전환이란 민감한 카드를 꺼내들었는지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SK 김성근 감독은 “지금은 아니다. 선수들은 야구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며 “모든 건 순수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더욱이 총의를 모았다고 하지만 몇몇 선수들의 말은 달랐다. “노조를 만드느냐 아니냐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선수협에서 노조를 만들려고 하니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형식으로 위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특히 구단 추진위원 중 한명이라고 밝힌 모 선수는 “선수 입장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에 물론 동의하지만 왜 지금인지는 애매하다. 정확한 상황을 확인해봐야겠다”고 밝혔다. ○KBO ‘불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즉각적으로 ‘불가’ 입장을 공식화했다. KBO 이상일 총괄본부장은 “노조 설립은 2001년 1월 KBO, 8개 구단 사장단 대표,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의 전신) 3자가 작성한 합의문에도 어긋난다. 합의문에는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합의문에 대해 선수협 권 총장은 기자회견 때 “그런 문건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 만약 그렇다면 관중 600만 시대가 온다면 노조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냐”라고 되물었지만 KBO는 합의문의 법적 효력에 대해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덧붙여 “KBO 결산과 사무총장 인선을 다룰 이사회가 30일 예정돼 있다. 이사회에서 보다 자세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수협이 공개를 주장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비 용처와 ‘시구방해’ 논란에 대해서도 이 본부장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 본부장은 “(관리팀에) WBC 경비 사용내역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얼마든지 공개하겠다”며 “WBC 때 대략 20억원을 지출했는데 선수단 격려금 3억원도 포함돼 있다. 하와이 훈련 때부터 호텔을 1인1실로 배정하고, 최고급 훈련장비를 지급했다. 대부분 훈련 경비였다”고 밝혔다. 시구방해 시비에 대해서는 “밀실에서 모의했다면 방해공작이겠지만 KBO는 떳떳하다. 당일(한국시간 3월 18일 일본전) 선수협 권 사무총장의 시구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뒤 WBC 조직위에 경위를 물어보고 항의했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는 KBO인데 사전 양해도 없었던데 따른 공식절차였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KBO와 권시형 총장의 ‘악연’ 선수협이 시즌 도중 느닷없이 노조 전환을 선언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향후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선수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노조 전환을 추진하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선수협이 KBO 사무총장 인선이 임박한 시기에 ‘모종의 복선을 깔고 루비콘강을 건너려 한다’는 시각이다. 원래 노조는 비밀리에 설립 절차를 밟고 추후 ‘만들었다’고 공표하는 수순이 상식이지만 선수협은 ‘만들겠다’고 먼저 공언했다. 이는 의도적 ‘협박카드’ 또는 ‘협상카드’가 아니냐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그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하일성 KBO 사무총장의 퇴진이 기정사실화하자 KBO를 상대로 공세로 전환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권 총장과 KBO의 해묵은 ‘악연’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1월 선수협의회 태동 당시 KBO는 한건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선수협의회의 배후에는 전 국민회의 권시형 정책전문위원, ○○○ 정책전문위원 그리고 ○○○ 전 체육기자연맹 회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돼 있다. 당시 선수협의회 설립을 극구 반대한 KBO와 특정인물에 대한 권 총장의 반감이 9년여의 세월을 건너뛰어 묘한 시점과 상황 속에 은밀히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근거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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