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맘 때 일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본선 추첨 결과 한국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같은 조에 배정됐다. 그날 밤, 난 한국이 1라운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어두운 전 망을 송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은 그 때와 너무 비슷하다. 영원한 우승 후보, 실속 있는 유럽 팀, 아프리카의 복병과 같은 조에 들어간 것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어렵겠지만 해 볼만하다’란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팽배해 있는 것조차 똑같다.
심지어 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는 시드 배정국, 실점은 하지 않지만 골을 넣지도 못하는 재미없는 팀, 감독 문제에 돈 문제로 내분을 겪고 있는 다크호스까지.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는 그런 팀들로 여겨지고 있다.
다시 4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한국은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문제는 프랑스와 맞붙은 2차전이었다.
경기내용에서는 완전히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막판 동점골 덕분에 겨우 승점 1점을 챙겼다. 골키퍼 이운재는 그 경기가 끝나고 공동취재구역에서 팬들에게 사과했다. 졸전을 펼친 것 때문이 아니라,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짓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만 하기도 했다. 한국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조 1위에 오르는, 다소 어색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을 맞았고 스위스에 패하더라도 프랑스와 토고의 경기결과에 따라 올라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전이 열리기 직전, 난 프랑스인 편집장과 함께 베를린에서 열리게 될지도 모를 ‘동전 던지기’ 행사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차라리 스위스에 완패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하노버에서 열린 경기 이후, 우리는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4강 신화’의 단꿈에서 깨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시아 최강팀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남아공에서 한국은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차례로 상대하게 된다. 이번에도 쉽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대회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이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패자의 허세가 아닌, 승자의 여유 말이다.
FIFA.COM 에디터. 2002월드컵 때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 세상에서 기사를 쓰면서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