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나의 해 떴다” 대구 팔공산서 2010년 ‘호랑이 해’ 신년 해맞이

입력 2010-0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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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까지 치겠다!’ 소프트뱅크에 입단한 이범호는 2010년 일본무대에 도전장을 던진다. 팔공산의 천성암에 올라 일출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태양을 치고 있는 듯한 배트 끝에서 일본 정복의 의지가 느껴진다.

일본 진출 첫해 130경기 출전 목표 - 독기의 승부사“실패 전망 잠재운다”
이범호(29·소프트뱅크)가 새해 첫날을 앞두고 새벽 팔공산에 올랐다. 칠흑 같은 어둠. 얼음처럼 차갑고 청명한 새벽 공기. 가파른 하늘길로 올라가는 그의 거친 숨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그리고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천성암. 팔공산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지만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암자에 도착했다. “범호 선수, 일본 진출 축하합니다.” 스님은 온화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이범호는 지난해 새해 첫 날에도 이곳을 찾았다. 일출을 본 뒤 자신도 모르게 “해떴다!”를 외쳤다. 해돋이를 구경나온 주위사람들은 “범호씨가 가장 먼저 해를 봤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며 축하해줬다.

그래서였을까. 신기하게도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홈런타자들을 제치고 김태균과 함께 공동 홈런왕에 올랐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3으로 뒤진 9회말 2사 2루 벼랑 끝 승부에서 일본 최고투수로 통하는 다르빗슈를 통타해 극적인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 영웅이 됐다. 시즌 후에는 갈망하던 일본 진출의 꿈을 이뤘다.

그래서 올해도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해 팔공산에 올랐다. 마치 주사위를 던져 놓은 듯, 법당 앞에 절묘한 형태로 누워있는 바위 위에 섰다. 하늘 끝자락에서 여명의 기운이 노을처럼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먼 산 위로 빨간 햇살이 촛불처럼 머리를 내밀었다.

이범호(왼쪽)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팔공산 천성암에 올랐다. 법당에서 아버지 이광희 씨(오른쪽)와 합장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다.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그는 한 가지의 소원만 빌었다. “외국에서 다치면 더 큰 일이잖아요. 일단 첫해엔 130경기 출장을 목표로 잡았어요. 그러면 내가 그리고 있는 성적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새로운 무대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그래도 적응해야죠. 이겨내고 성공해야죠.”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일본 진출도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독기와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더 강한 승부사”라고 표현한다.

대구고 시절 프로지명을 걱정했지만 2000년 한화에 입단하며 꿈에 그리던 프로선수가 됐다. 프로 초년병 시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공수를 겸비한 국가대표 3루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일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대부분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거액을 받고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입었다. 이젠 주위에서 “약점이 많아 일본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수군거린다.

그는 이런 평가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며 웃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그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사나이, 일본 사무라이와 ‘칼끝 승부’에 나서는 ‘한국산 검객’ 이범호의 도전과 승부는 이제 시작됐다.
대구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대구=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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