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인물탐구] SK 이영욱 “난 애 아빠…우승보너스가 절실”

입력 2011-0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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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위해 우승 쏜다!” 우승 보너스로 살아야했던 최근 2년간. 새 시즌을 앞두고 비장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다. SK 이영욱은 스프링캠프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공익근무 마치고 복귀 SK 이영욱 의 각오…수입 한푼 없이 결혼도 하고 첫 딸 얻어
17일 오키나와현 나고구장에서 만난 SK 투수 이영욱은 “나는 우승이 정말 절실하다”고 했다. 명분이나 명예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절실했다. “2007년, 2008년 우승 보너스로 2년을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고향 대구에서 근무했다.

수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결혼을 했다. 덜컥 첫 딸까지 얻었다. 식구들에게, 장모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보답은 우승, 더 정확히 말하면 우승보너스다. 그리고 연봉인상을 뼈에 새기고 이영욱은 2011시즌을 맞는다. 이영욱의 2011시즌 비장함은 2009년 봄부터 싹을 틔웠다.


● 대구에서

2008년 우승을 하고 군대에 갔다. 한 1년은 야구를 잊고 싶었다. 그렇게 살수 있을 줄 알았다. 인천을 떠나 대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다. 운동은 완전히 쉬었다. 주5일이니까 주말에는 딱히 할 것도 없는데 학창시절, 같이 야구했던 친구들이 어느 날 ‘야구하자’고 연락이 왔다. 사회인 야구경기였는데 2이닝 7실점, 박살이 났다. 어디 소문이라도 날까 창피했다. 이제 연습 좀 해야겠다 싶었다.

마침 조금 있자니 2009년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TV로 보니 갑자기 너무 야구가 하고 싶어졌다. 그때가 3월 무렵인데 혼자서 연습을 시작했다. 야구는 단체운동이라 이론과 달리 개인훈련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 모교(대구상고)를 찾아 새까만 후배들에 끼어 연습했다. 그런데 고교야구는 전국대회에 맞춰 돌아가니 훈련이 불규칙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어깨가 아팠다. 한번도 수술한 적이 없었는데…. 팔이 안 올라갈 지경이었다. 수술 없이 홀로 재활을 했다. 6시에 공익근무를 마치면 밤 11시까지 거의 매일 홀로 보강운동을 했다. 아내는 “식구보다 야구를 더 사랑한다”고 핀잔을 줬지만 아기를 생각하면 이 길밖에 없다는 현실을 다 알고 하는 말이었다.


● 인천에서

그렇게 대구에서 지낼 때, SK에서 연락이 왔다. 인천에 공익근무 자리를 알아봐줄 테니 옮기라는 제의였다. 구단의 체계적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이사를 결심했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동의해줬다.

문학에 다시 와서 제일 놀란 것은 주차장이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비슷했던 수준의 동료들 차가 다 외제로 바뀌어져 있었다. 여학생 팬들이 야구장에서 기다리지를 않나, 인기도 몰라보게 뜨거워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문학구장 주차 정리요원이 될 뻔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천 남구청 리틀야구단 코치로 일하게 됐다. 구단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2군에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훈련을 마치면 시간이 딱 맞아 자연스레 SK의 경기를 보게 됐다.

경기가 끝나면 일부러 구장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 “야구장 불 좀 조금만 천천히 꺼주시면 안될까요?” 야간훈련이 잦은 SK에서 그것까지 다 기다리고 난 다음에 맨 마지막에 불 꺼지기 직전까지 마운드에 올라가서 던지는 것이 일과가 됐다.

이 시절, 손에 팬북을 든 꼬마팬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팬북을 펼쳐보더니 “없네”하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이제 2011년 팬북에 이영욱의 프로필은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그 아이의 사인요청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 일본에서

소집해제 직전, 모아둔 휴가를 써서 일본 고지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그때 대략 2000구를 던졌다. 야구를 하고 싶던 마음이 1주일 만에 다 사라질 정도였다. 그러고도 고지 봄 캠프에서 다시 2000구를 던졌다. 그래도 안 아프고, 용케 견딘 것을 보니 이제 시즌이 기다려진다.

동료들과 달리 공익근무 덕택에 딸과 1년여를 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라 느낀다. 멀리 떨어진 지금은 화상통화로 가족을 본다. 얼마 전 통화 때, 딸이 무언가를 집었는데 우승반지 2개였다. 아내는 옆에서 “이런 거 3개 더 갖고 와”라고 했다.

SK로 돌아와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최동수 선배다. 25번을 흔쾌히 양보해줬다. 원래 이영욱이 달던 번호였다. 야구를 잘해서, 연봉을 올려서 밥이라도 한번 사야겠다는 마음이다. 다시 SK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뿌듯한 이영욱이다.나고(일본 오키나와현)|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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