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선수 별명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1-06-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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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현재 프로야구 최고의 화두는 ‘야왕’이다. 5월이 되어 한화 이글스가 꿈틀거리며 성적을 내기 시작하는 사이, 한 열성팬이 한대화 감독에게 붙인 별명은 팀 상승세와 함께 팬들에게 급속도로 퍼졌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한화 경기를 소재로 한 야구 소설 ‘야왕지’가 절찬리에 연재되고 있으며, 한 감독의 각종 발언은 ‘야왕 어록’으로 각종 야구 게시판을 오르내린다. 뿐인가. 충청도 특유의 어눌한 말투마저 ‘킹스 스피치’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니, 처음에는 놀림인 줄 알았다는 한 감독도 이제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만 하겠다.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에게 인기와 더불어 가장 먼저 따라오는 것이 아마도 별명이리라. 인기 좀 있다 하는 선수나 감독치고 본명으로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종범신’이나 ‘양신’ 등은 이제 선수 본인의 이름보다 더 자연스럽고, 초대 선수협 회장이었던 송진우는 이미 마운드를 떠난 지금도 여전히 ‘송회장’이며, 가장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던 김태균은 ‘김별명’이라는 별명으로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꽃범호, 고제트, 무등 메시, 돌부처, 괴물 등등 팬들의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수많은 별명들은 어쩌면 그들이 그만큼 팬들의 인기와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일종의 표징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때로는 선수 본인에게 대단히 모욕적이거나 상처가 되는 별명도 있다. 최희섭은 근거 없는 풍문이 던져 준 ‘형저메’라는 별명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성의 없는 수비를 한다고 ‘라뱅’이라 불리던 이병규 또한 자신이 결코 성의 없이 플레이 하지 않음을 피력하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마운드의 투수들에게 자주 짜증을 낸다는 의미의 별명을 가진 모 포수는 사석에서 필자에게, 오해로 빚어진 별명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털어놓은바 있다. 최근에는 마무리 투수의 성에 ‘작가’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야구계에 때아닌 작가 열풍이 불고 있는데, 절체절명의 위기를 견디며 버텨내야 하는 마무리 투수들에게 ‘○작가’라는 별명이 얼마나 가슴에 아프게 박히곤 했을까.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부르던 별명은 친밀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때로 경멸이나 조롱의 뜻이 담긴 별명은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원치 않는 별명으로 불려야 하는 선수들. 공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섣불리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하는 그 괴로움의 부피는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이리라. 기왕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 붙이는 별명이라면 가능한 한 선수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하고 듣기 좋은 별명이 어떨까. 그 옛날 고전적인 별명 ‘무등산 폭격’나 ‘리틀 쿠바’처럼 말이다.

한화 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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